[사커비전] 일본색으로 물드는 "월드컵 문화"

중앙일보

입력

며칠 전 일본의 영화음악 작곡가 사카모토 류이치를 월드컵송 작곡가로 선정했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를 봤다.

최근 월드컵 공식 음반 제작사로 일본의 '소니 뮤직' 을 지정한 FIFA가 월드컵송 작곡가도 일본인으로 결정했다는 것이다. 화를 억누르기가 쉽지 않았다.

사카모토가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행사의 축전 곡을 작곡했고, 대중음악으로 세계음악팬들에게 친숙하다는 점이 선정요인이라고는 하나 월드컵에 관련된 문화적인 영역과 월드컵을 통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분야에서 모두 일본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일본의 들러리' 라는 생각도 이어졌다.

99년 12월 1일 발표된 한.일 월드컵 공식 마스코트 '아트모' 가 일본의 애니메이션 캐릭터인 '포켓몬' 을 닮았다는 지적(생김은 다르지만 색이라든가 개념은 비슷한 요소가 많다)이 많아 떨떠름했던 기억도 다시 떠올리게 된다.

월드컵은 단순히 축구경기만 하는 행사가 아니다. 월드컵이라는 이벤트를 통해 FIFA는 엄청난 돈을 벌어들인다. 돈만 된다면 막강한 힘을 이용해 '무소불위' 의 칼을 휘둘러 댄다. 대표적인 예가 프랑스월드컵과 비교해 많게는 수십배까지 인상된 방송중계권료다. 이런 와중에 운동장을 10개나 새로 만들고, 여러 가지 제반 축구인프라를 구축하는데 들어가는 한국의 예산은 실로 엄청나다. 이렇게 많은 돈을 투자해 우리는 무엇을 얻어야 할까?

우리는 월드컵을 통해 유형과 무형의 자산을 후손들에게 남겨야 할 것이다. 유형의 자산은 운동장.기반 시설 등이 될 것이고, 무형의 자산은 월드컵을 통해 만들어지는 문화적 유산을 말함이다.

그런데 문화적 유산인 캐릭터와 월드컵송 등에서 일본색이 잔뜩 묻어나는 것을 후손들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월드컵송이 한국의 10개 구장에서 울려 퍼지고, 대회 홍보용 책에 월드컵송 작곡가 사카모토는 대중성과 현대성을 겸비한 세계적인 작곡가라고 소개해야 하는 상황에 대해 우리 국민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한번 생각해보자.

다음 달에는 공식 월드컵송을 부를 가수를 최종 선정하는데 현재 한국.일본, 그리고 제3국에서 가장 지명도 높은 세명의 가수가 영어.한국어.일본어 등 세가지 버전의 노래를 부르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고 한다.

작곡하기 전 가수를 먼저 선정하는 것은 가수의 개성에 따라 팝.클래식 등 장르별로 다양하고 대중성 있는 노래를 전하기 위한 조치라는 FIFA의 일방적 입장에 월드컵조직위원회나 정부에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 일본인이 작곡가로 선정됐다면 가수는 한국인이 맡아야 한다는 강한 의지를 갖고 FIFA와 긴급히 접촉해야 한다.

우리는 분명 일본과 공동 개최하는 절반의 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야금야금 일본에 당하고만 있다.

조직위원회 공동위원장에게 이렇게 따져 묻고 싶다.

"일본은 조직위원장이 한 사람이고, 우리는 조직위원장이 두 사람이나 되는데 왜 중요한 결정 사항은 다 일본에 뺏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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