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충돌 땐 특단 조치” 총리 경고 … 한 발씩 물러선 검·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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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정면충돌로 치닫던 검찰과 경찰의 ‘이중수사’ 갈등이 소강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김황식 국무총리가 13일 직접 나서 우려를 표명하면서다. 김 총리는 이날 오전 국무회의를 마친 뒤 권재진 법무부 장관과 맹형규 행정안전부 장관을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집무실로 불렀다. 김 총리는 “최근 검찰과 경찰이 수사 갈등으로 국민께 걱정을 끼치고 있다”며 “두 기관(의 행태)에 대해 유감”이라고 말했다.

다단계 사기범 조희팔씨 측과 유진기업 등에서 10억원대 금품수수 의혹을 받고 있는 김광준(51) 서울고검 검사 사건 수사를 둘러싼 양 기관 갈등을 지적한 것이다. 이어 두 장관에게 “국민이 우려하는 상황이 지속될 경우 정부 차원의 특단의 조치를 강구하겠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형사소송법령에 근거해 검·경이 상호협력해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하라”고 주문했다.

 이 자리에 배석했던 임종룡 국무총리실장은 ‘특단의 조치’에 대해 “두 기관이 자율적으로 해결하지 않는다면 조정 등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행 형사소송법은 경찰의 수사개시권을 보장하되 인권침해를 막기 위해 검찰이 지휘권을 행사하고, 이의가 있을 때 경찰이 재지휘 건의를 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총리의 우려 표명 이후 경찰은 한발 물러섰다. 경찰 고위 관계자는 “특임검사팀과 이중수사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수사를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특임검사가 수사하지 않는 부분에 대해 수사하고 검찰에서 이미 조사한 참고인을 재소환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이날 오전 김기용 경찰청장의 기자간담회 때와 분위기가 확 달라진 것이다. 당시 김 청장은 “이중수사 구조는 경찰이 먼저 수사하는 상황에서 검찰이 (특임검사를 임명해) 수사하면서 만들어졌다. 법리 를 떠나 적절하지 않다”며 독자수사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자 대검찰청은 이날 오후 “검경 수사협의회를 열자”고 경찰에 대화를 제의했다. 검경 수사협의회는 검찰과 경찰의 수사제도 개선을 위한 협의체다. 지난해 형사소송법 개정 이후 검찰의 수사지휘 범위를 정한 ‘검사의 사법경찰관리에 대한 수사지휘 및 사법경찰관리의 수사준칙에 관한 규정’(대통령령)에 따라 만들어졌다.

 김우현 대검 형사정책단장은 “수사협의회는 검·경이 만나 허심탄회하게 논의하는 자리”라며 “가능한 한 이견을 좁힐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법률상 의결기구는 아니지만 검·경 양측이 사상 초유의 이중수사 갈등 이후 처음으로 머리를 맞댄다는 의미가 있다. 검경 수사협의회는 올해는 3월(밀양의 검사 고소 사건), 5월(경찰의 지휘거부 사건), 9월(검사 지휘 없는 성폭력범죄 불구속송치 사건) 등 세 차례 열렸다.

 경찰이 검찰의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검·경 양측은 15일 수사협의회를 열기로 했다. 경찰청 고위 관계자는 “검찰의 수사협의회 개최 제의를 수용한다”며 “검사 수뢰 사건의 본질은 수사인데 검·경 수사권 분쟁으로 비쳐 국민 불안감이 커진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편 일선 현장의 경찰관들은 16일 세종시에서 긴급 토론회를 열고 “검찰이 특임검사를 지명해 이중수사 상황을 초래하고 경찰의 정당한 수사를 방해하고 있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채택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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