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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환출자’ 모르면서 질문한 의원 … 경제민주화 ‘디테일’이 중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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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9일 국회 정무위원회 회의장. 대기업 경제력집중 완화를 위한 법률 개정에 관한 공청회가 열렸다. 이상직 민주통합당 의원이 김정호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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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의원: 금산분리니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미시적인 거다. 당연히 해야겠지만 효과가 얼마나 있겠나. 현대차와 삼성은 영업이익률이 많이 나는데 협력업체는 영업이익률이 적다. (납품단가를) 동네 머슴보다 덜 준다. (중략) 기본적인 철학이 잘못됐다.

 ▶김 교수: 제 의견을 들으려고 부르신 것 아닌가.

 ▶이: 마진 분석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하는 얘기다.

 ▶김: 이익률이 순환출자나 출자제한하고 무슨 관계가 있나. 납품단가와 관련이 있을 텐데.

 ▶이: 순환출자 하나 얘기하겠다. 현대차 블루핸즈를 아는가. 카센터다. (중략) 동네 빵집뿐 아니라 이런 식으로 문어발식 진출을 하면서….

 ▶김: 의원님, 제가 진술할 게 뭔가요?

 ▶이: 이거 순환출자 맞지요? 이거 끊는 게 맞습니까, 안 맞습니까?

 ▶김: 그건 순환출자로 할 수도 있고 기존 회사의 사업부로 할 수도 있다. 굳이 계열사로 진출하는 것만 규제할 이유는 없다.

 ▶이: 골목 카센터 업종이 무수히 많은데 그분들은 상관없다는 건가?

 ▶김: 그건 순환출자하고 관련이 없다.

 ▶이: 유통업만 골목상권에 진출하는 게 아니라 재벌이 블루핸즈처럼 순환출자식으로 골목상권에 진출하고 있다.

 ▶김: (웃으며) 네, 알겠습니다.

 둘 사이에 대략 이런 문답이 오갔다. 공청회를 지켜본 한 참석자는 “이 의원이 순환출자의 개념조차 잘 모르고 질문을 해댔다”고 말했다. 팩트도 틀렸다. 현대자동차의 정비가맹점 브랜드인 블루핸즈는 별도 회사가 아니다. 현대차가 직접 사업을 한다. 그러니 순환출자와는 상관 없다.

 경제민주화는 각론으로 들어갈수록 어렵고 복잡하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처럼 경제민주화 관련 주요 법안을 다루는 정무위 의원조차 헷갈릴 정도다. 경제민주화를 내건 대선 후보들은 쉽고 간명한 공약만 내거는 경향이 있다. 출자총액제한제나 상호출자 얘기만 자주 나오는 이유다.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는 “대선 캠프가 유권자의 관심을 끌 만한 정치적인 슬로건만 내세우지 말고 ‘어떻게’ 재벌을 실제로 변화시킬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각론만 파고들다 전체 그림을 놓칠 우려도 있다. 한철수 공정거래위원회 사무처장은 “재벌 문제는 기업의 경쟁력을 해치지 않는 가운데 중소기업을 살리고 총수의 사익 추구를 막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처방을 강구해야 한다”며 “공정거래법뿐 아니라 회사법·세법·금융·중소기업관련법 등에 걸쳐 종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경제민주화 각론을 쉽게 풀어봤다.

서경호·한애란 기자

◆도움말 주신 분(가나다순)=김기원 방송통신대 경제학과 교수,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 김성진 참여연대 시민경제위원회 부위원장(변호사), 박승록 착한자본주의연구원 대표, 신영선 공정거래위원회 경쟁정책국장, 연강흠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 유진수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 이상승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이석배 단국대 법학과 교수, 이승훈 서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이인실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최병일 한국경제연구원장,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최정표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경실련 공동대표), 한철수 공정위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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