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과 차별 말라” 소무역상인들 승선 거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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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따리 상인 500여 명이 여객선 승선을 거부한 가운데 12일 오전 경기도 평택항 국제여객터미널에 있는 각 선박회사 매표소 주변이 썰렁하다. 보따리 상인들은 평택항에서 중국 선적의 평택교동훼리㈜ 여객선을 이용해 중국 산둥(山東)성 웨이하이(威海)항을 오가며 장사를 해왔다. [최모란 기자]

올해 9월까지 39만3000여 명이 다녀가는 등 국제 여객항으로 거듭나고 있는 경기 평택항국제여객터미널. 한국과 중국을 오가는 경기도 지역 소무역상인(보따리상)들의 활동 근거지로도 유명하다. 현재 2000여 명의 보따리상이 4개 한·중 카페리 항로를 이용해 중국으로 오가고 있다. 그런데 요즘 이곳의 분위기는 찬바람이 쌩쌩 분다. 보따리상과 선박회사 간 갈등 때문이다. 일부 보따리상들은 “선박회사의 횡포를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며 여객선 승선 거부까지 선언하고 나섰다.

 12일 오전 평택항 여객터미널 2층 소무역상인연합회 사무실에는 20여 명의 보따리상이 모여들었다. 당초 예상대로라면 11일(일요일) 오후 7시 배를 타고 중국으로 떠났어야 할 사람들이다. “이제 그 배는 더 이상 타고 싶지 않아요. 중국 관광객만 사람이고 우리는 무슨 짐짝 취급을 해요.” 보따리상 박모(45·여)씨가 분을 참지 못했다.

 이들은 매주 세 차례 평택교동훼리㈜ 여객선을 타고 중국 산둥(山東)성 웨이하이(威海)항을 오가며 장사를 하는 소무역상인연합회원들이다. 이들 500여 명은 11일부터 여객선 승선을 거부하고 있다. 일부 상인들은 대륭해운과 일조국제훼리 등 다른 한·중 카페리 여객선을 이용해 소무역상 활동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11일 중국으로 출항한 평택교동훼리 여객선(2만4000t, 정원 720명)은 고작 150여 명의 승객과 컨테이너 화물만을 싣고 중국으로 출항했다. 보따리상 1인당 왕복 승선 비용이 10만8000원(항만세 8600원 별도)이니 이날 하루만 해당 선박회사가본 피해는 5000여만원(추정치)에 이른다.

 보따리상들은 승선 거부의 이유로 여객선 측의 승객 차별을 내세우고 있다. 여객선 측이 창문이 있거나 TV가 설치된 좋은 방은 관광객이나 중국인들에게 우선으로 배정한다는 것이다. 이모(65)씨는 “담요나 모포도 중국인들에겐 깨끗한 것을 주는데 우리 한국 상인들한테는 세탁도 안 된 낡은 것을 지급해 다들 피부병으로 고생했다”고 했다. 지난달 10일에는 부당한 대우를 참다 못한 일부 상인들이 선박회사에 강력히 항의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그러나 회사 측은 오히려 “항의하는 사람들에겐 배표를 팔지 않겠다”고 맞섰고 실제로 40여 명의 상인이 표를 구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성수(55) 평택교동훼리 여객선 소무역상인 회장은 “지난달 말에는 여객선이 중국에서 접촉사고를 일으키는 바람에 상인 489명이 5일 동안 중국에 묶여 있었는데도 상황 설명이나 사과 한마디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공식 사과와 재발 방지는 물론 한국 상인들에 대한 차별을 개선하기 위해 무기한 승선 거부에 나서게 됐다”고 설명했다.

 평택교동훼리 관계자는 "현재 중국 본사 등과 협의해 이번 문제가 원만하게 해결될 수 있도록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평택시항만지원사업소 관계자는 “평택교동훼리를 비롯, 평택항에 있는 한·중 여객선사들 대부분이 중국 자본으로 세워진 회사들이라 중국인 승객을 우대하다 보니 이런 일이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평택=최모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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