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전과 심청전의 만남, 뮤지컬 ‘인당수 사랑가’

중앙일보

입력

‘인당수 사랑가’에서 변학도의 후첩이 되고자 하는 기생들(왼쪽)과 꼭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하는 춘향과 몽룡

 뮤지컬 ‘인당수 사랑가’의 최성신 연출은 회상했다. “10년 전 학천 블루 소극장에서 처음 공연했을 때, 동숭아트센터를 지나며 우리끼리 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인당수 사랑가’도 10년쯤 되면 저 무대에 한번 오르지 않겠느냐는 바람이었죠.” 그렇게 꼭 10년이 지나고, 최 감독의 꿈은 현실이 됐다. 당시 트렁크 3대면 다 옮겨 담을 수 있던 짐은 이제 5t 트럭 3대에 나눠 담아도 모자랄 정도다. 인당수 사랑가 팀은 10년간 성장통을 앓고 난 후에야 비로소 최종판을 완성한 것 같다고 했다. 지난 4일 개막한 2012년의 무대 위에는 지나간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있었다.

 극은 춘향전과 심청전, 그리고 현대적 요소를 절묘하게 섞었다. 극을 이끌어 가는 인물은 춘향이지만, 그의 성씨는 ‘성’이 아닌 ‘심’이다. 심봉사를 아버지로 둔 설정 탓이다. 꽃 향기 나는 봄날 춘향과 몽룡은 사랑에 빠진다. 몽룡에겐 하늘을 봐도, 책을 펼쳐도, 뿜어낸 담배 연기에도 춘향이 얼굴이 비친다. 이에 춘향도 “나는 세숫물 속에도 도련님 얼굴, 저녁놀 속에도 도련님 얼굴, 호롱불빛 그림자에도 도련님 얼굴”이라고 화답한다. 하지만 ‘춘향전’에 변학도가 빠질 수 있으랴. 이들 사랑에도 곧 위기가 찾아온다. 고전과의 차별점이라면 해당 극은 변학도의 악랄한 성품에 집중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랑의 약속이란 건 말이다, 사랑을 할 때만 약속이니라. 젊은 사내가 몸이 뜨거울 때 내뱉은 약속이라는 건 그 몸도 마음도 식어지면 그저 돌아보기도 민망한 헛말일 뿐이야”라는 대사처럼 중년 남성이 느낀 인생의 허무가그 왜곡된 욕망의 시발점이다. 그로 인해 결국 춘향과 몽룡은 인당수 앞에 서게 된다.

 이번 무대에서 가장 많이 달라진 점은 음악과 무대 디자인이다. 각 넘버는 서양 오케스트라를 바탕으로 피리, 소금, 대금, 아쟁 등을 더해 동·서양 악기의 조화를 꾀했다. 판소리 무대에서나 볼 수 있는 도창과 고수가 뮤지컬 안으로 들어온 것도 이 작품의 매력이다. 도창은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2호 판소리 이수자 정상희가 맡아 우리의 소리로서 극을 이끌어간다. 고수는 중요 무형문화재 제5호 김세종제 ‘춘향가’ 이수자 이상화로 북과 장구로 도창의 장단을 맞춰주면서, 극의 적재적소에 각종 효과음을 덧입힌다. 대도구에서부터 소품 하나까지 규방공예와 한지공예로 제작한 무대 구성과 전통 꼭두극의 도입은 전통의 멋을 한층 배가시켰단 평을 받는다.

 연출과 작가는 초연 이래 10년간 ‘인당수 사랑가’를 이끌어온 최성신, 박새봄 콤비가 맡았다. 춘향 역에는 뮤지컬 ‘모차르트’ ‘김종욱 찾기’ ‘화성에서 꿈꾸다’에서 활약한 임강희가 단독 캐스팅됐다. 몽룡은 뮤지컬 ‘지하철 1호선’ 연극 ‘키사라기 미키짱’의 박정표와, 뮤지컬 ‘블루사이공’ ‘렌트’의 송욱경이 연기한다. 뮤지컬 ‘영웅을 기다리며’ ‘투란도트’의 손광업에게선 중후한 매력의 변학도를, 뮤지컬 ‘영웅’ ‘피맛골 연가’의 임현수에게선 샤프한 느낌의 변학도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티켓 가격은 R석 5만원, S석 3만5000원. 인터파크를 통해 예매할 수 있다. 공연의 막은 12월 2일까지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에서 오른다.

<글=한다혜 기자 blushe@joongang.co.kr 사진="컴퍼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