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보 한 방이 취임 54일 BBC 사장 날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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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조지 엔트위슬

조지 엔트위슬(50) 영국 BBC방송 사장이 10일(현지시간) 취임 54일 만에 자진 사퇴했다. 대형 오보 때문이다.

 사건은 지난 2일 이 방송의 보도 프로그램 ‘뉴스 나이트’가 1980년대에 벌어진 한 정치인의 아동 성폭행 의혹을 제기한 데서 비롯됐다. 피해자의 증언에 가해자로 등장하는 인물의 실명은 방송에서 걸러졌지만 해당 지역과 당시 맡고 있던 당직 등은 공개됐다. 사실상 보수당 상원의원 앨러스테어 매칼파인(70)을 지목한 셈이었다. 다른 언론들은 매칼파인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며 BBC의 보도 내용을 널리 퍼뜨렸다.

 매칼파인은 즉각 결백을 주장하며 BBC를 고소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다른 언론사의 확인 취재가 시작됐고, BBC 보도에서 피해자로 등장한 남성이 매칼파인과 실제 가해자의 얼굴을 혼동한 것으로 확인됐다. BBC는 매칼파인에게 사실 여부를 묻지도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BBC는 결국 9일 오보였음을 시인하고 사과 및 정정 보도를 냈다.

 이때까지만 해도 BBC 사장이 물러날 것으로 예상되지는 않았다. 그런데 엔트위슬은 한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뉴스 나이트’에서 매칼파인 관련 의혹을 보도하는지 몰랐다”고 말했다. 그러자 “BBC 사장이 중요 보도 내용도 미리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면 도대체 하는 일이 뭐냐”는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그는 인터뷰 하루 뒤에 “사장은 보도 내용에 대한 최종 책임을 지는 자리다. 가장 명예로운 선택을 위해 퇴진을 결심했다”며 사임을 발표했다.

 엔트위슬의 사퇴에는 최근 불거진 BBC 유명 방송 진행자 지미 새빌(1926∼2011)의 아동 성추행 스캔들도 영향을 미쳤다. 새빌은 방송 출연 아동 등 수백 명을 성적으로 학대했다는 의혹에 휩싸여 있으며, BBC는 이를 알고도 묵인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뉴스 나이트’에서는 지난해 가을 새빌의 소아성애 의혹을 폭로하려 했으나 당시 에디터의 반대로 불발에 그쳤다. 엔트위슬은 당시 BBC의 보도 분야를 관장하는 임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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