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성공하려면] 6. 부처 연두보고부터 없애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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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대통령은 바빠선 안된다. 역설적으로 대통령은 한가해야 한다. 그래야 성공한다. 대통령은 몸으로 때우는 자리가 아니다. 차분하게 생각하고 전략적인 판단을 하는 자리여야 한다.

그러나 역대 대통령들을 보면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의전적 행사가 너무 많다. 그러다 보니 정작 자신과 임기를 함께 할 장관.참모들과는 만나서 이야기할 시간이 별로 없다.

각 부처에서 빛이 날만한 일들은 대통령에게 공을 돌리는 '충성'을 하느라 죄 대통령 행사로 돌리려고 한다. 일정이 잡힐 때까지 발표를 미루는 일이 흔하다.

또 여러 부처의 일이 걸리고 서로 의견이 다른 경우에는 대통령 행사를 통한 대통령 지시로 만들어 밀어붙이려는 경우가 많다.

여기다 각종 기공식.준공식.집회에 대통령이 참석해 달라는 요청이 빗발친다.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외교사절 접견 등 국가원수가 참석하고 주관해야 할 외교행사는 피할 수가 없다.

미국 클린턴 대통령의 선거참모였던 딕 모리스는 "대통령은 당선되고 나면 전국을 직접 돌아다니고 싶은 충동에 휩싸일 것"이라면서 "하지만 그런 일이 실제로는 자신의 지도력을 약화시킨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대통령의 시간은 대통령이 가진 가장 값비싼 상품이다. 이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대통령의 성패가 갈린다. '대통령은 몸이 바쁘면 둔해지는 자리'라는 워싱턴 정가의 격언은 그래서 설득력이 있다.

대통령이 형식적.의전적 행사에서 해방돼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장관들과 보다 많은 대화와 토론을 나누기를 당부한다.

잘못 임명한 사람이 아니라면 장관은 해당 분야의 최고 책임자이며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멀리 보는 사람이다. 당연히 이들에게 시간을 더 배정하고 수시로 만나 정책에 관해 토론해야 한다. 그래야 장관들에게 힘이 실린다.

장관들이 대통령을 만날 시간을 잡기 위해 의전 담당자의 눈치를 살피는 관행은 이제 없어져야 한다.

싱가포르의 리콴유 전 총리는 재임 중 시간을 잘 활용한 지도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의전행사에는 가급적 나가지 않았다. 대신 꼭 만나 이야기를 경청할 국내외 인사들을 초청해 오랜 시간을 보냈다.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을 초청했을 때, 사전에 키신저의 저작들을 모두 읽고는 긴 시간 대화를 나누고 싱가포르의 대외정책을 세우는 데 참고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새 대통령은 각종 의전적 행사를 획기적으로 줄이기를 권한다.

의전.경호 등 대통령 주변의 참모진은 물론, 각 부처나 각 지방자치단체.시민단체.이익단체 등도 모두 대통령의 의전적 행사를 줄여야 한다는 데 생각을 같이 해야 한다.

각종 보고도 줄일 것이 많다.

우선 형식적 절차에 머물고 있는 각 부처 연두보고부터 없애기 바란다. 대통령은 각 장관과 수시로 만나며 업무를 파악하는 것이 옳다. 여러 부처를 다 돌며 연두보고를 받으려니, 어떤 부처에서는 보고 일정이 잡힐 때까지 연초에 시행해야 할 정책 발표를 미루는 일까지 벌어진다.

대신 국무회의를 국무회의답게 만들어 활용해야 한다.

'절간'같은 국무회의 분위기를 바꿔, 장관들이 입을 열고 활발한 토론을 하는 분위기를 만들기 바란다. 국무회의를 본격적인 토의 장소로 활용하면 별도의 독대가 거의 필요없다.

청와대로 많은 사람들을 불러다 놓고 식사를 하거나 다과를 하며 '대통령 말씀'을 하는 행사도 피해야 한다.

이런 행사들은 모두 다 '각본'이라는 것을 이제 다 안다.

대통령 혼자 이야기하고 대부분의 참석자들은 침묵을 지키는 경직된 행사는 참석자들에게 오히려 불쾌감만 줄 뿐 아니라 대통령 본인의 시간 낭비인 줄 알아야 한다.

성공하는 대통령이 되려면 제한된 시간을 제대로 사용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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