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육상] 뚜렷한 세대 교체 바람

중앙일보

입력

지난 3일부터 13일(한국시간)까지 캐나다 에드먼턴에서 세계의 내로라하는 건각들이 총 출동한 가운데 열린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는 세대교체와 평준화 등 육상계에 일고 있는 여러가지 흐름이 두드러졌다.

먼저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세대 교체의 바람.

이번 대회에서는 3연패 이상에 성공한 선수는 남자 100m의 모리스 그린(미국.3연패)과 남자 멀리뛰기의 이반 페드로소(쿠바.4연패) 2명 뿐일만큼 지난 대회의 영광을 이어간 선수가 드물었다.

또한 대회 전체를 통틀어 3관왕은 없고 2관왕도 매리언 존스(미국) 단 1명에 그칠 만큼 금메달이 고루 돌아간 점도 선수들간의 전력 평준화와 관련, 주목을 끄는 대목.

대륙간 평준화 현상도 두드러졌다.

남자 100m에서는 미국의 독식이 있었지만 여자 단거리에서는 북중미의 아성에 유럽의 거센 도전이 있었고 세계 무대에 명함도 못내밀던 일본의 전 종목에 걸친 눈부신 성장은 대회 기간 내내 화제였다.

한편 북미 지역에서는 처음 열린 이 대회는 이 지역에서 육상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킨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됐지만 세계신기록이 하나도 나오지 않고 운영 미숙으로 여러차례 진행에 차질을 빚었던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리고 약물 문제는 새천년 첫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여전히 극복되지 못한 숙제로 남았다.

▲뚜렷한 세대 교체 바람 이번 대회 가장 큰 이변으로 받아들여지는 종목은 남자 10,000m.

대회 5연패에 도전하며 이 종목에서 93년 이후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던 하일레 게브르셀라시에(에티오피아)가 케냐의 신예 찰스 카마티에 의해 무너진 것이다.

이 뿐 아니라 약물 의혹이 있기는 하지만 여자 5,000m에서 3연패를 노리던 가브리엘라 스자보(루마니아)가 올가 예고로바(러시아)에게 왕좌를 내줬고 여자 100m의 매리언 존스(미국)도 역시 3연패의 길목에서 자나 핀투세비치(우크라이나)에게 발목을 잡혔다.

마이클 존스(미국)가 은퇴한 가운데 열린 남자 400m에서는 아바드 몬쿠르(바하마)라는 21세의 새로운 스타를 탄생시켰다.

또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남자 높이뛰기의 하비에르 소토마요르(쿠바)와 여자 멀리뛰기의 하이케 드렉슬러(독일) 등은 메달 획득에도 실패하며 뚜렷한 퇴조의 징조를 보였다.

세대 교체 바람과 맞물려 대회 다관왕도 드물었다.

3관왕이 한 명도 없고 존스가 유일하게 2관왕에 올랐을 만큼 여러 종목을 독식하는 선수가 없었고, 이는 점점 전문화되는 세계 육상계의 추세를 반증했다.

▲대륙간 평준화 단거리 종목을 휩쓸던 미국의 독주에 유럽세의 반격이 거셌다.

남자 100m에서는 미국이 메달을 휩쓸었지만 남자 200m와 400m에서는 각각 콘스타디노스 케데리스(그리스)와 몬쿠르(바하마)가 정상에 올랐고 핀투세비치(우크라이나)도 여자 100m에서 존스를 제치며 미국의 독주를 저지했다.

여자 400m 계주에서 독일과 프랑스가 전통의 강호인 바하마와 자메이카 등 북중미 국가들을 제치고 메달을 차지한 것도 이러한 경향을 드러낸 것.

마라톤을 비롯한 중장거리에서 아프리카의 강세는 더욱 공고해졌다.

대회 첫날 남자 마라톤에서 스페인의 대회 4연패를 저지하며 게자헹 아베라(에티오피아)와 시몬 비오트(케냐)가 1.2위를 차지한 아프리카는 남자 5,000m와 10,000m, 그리고 여자 10,000m에서는 모든 메달을 휩쓸며 검은 대륙의 저력을 과시했다.

아프리카는 여자 1,500m와 5,000m에서만 금메달을 놓쳤을 뿐 남자 1,500m와 여자 800m에서도 정상에 올랐다.

한편 일본의 약진은 육상의 불모지였던 아시아 대륙의 잠재력을 일깨워주기에 충분했다.

남자 마라톤에서 단체전 2위를 차지한 일본은 남자 해머던지기에서 무로후시가 은메달, 남자 400m 허들에서 다메스가 동메달을 차지하며 트랙과 필드 모두에서 세계선수권대회 사상 첫 메달을 따내며 기세를 올렸다.

또 마지막날 열린 여자마라톤에서도 우승은 놓쳤지만 10위 안에 3명이 들며 단체전 우승으로 대회를 마감했다.

반면 중국은 단 한개의 메달도 따지 못하는 부진 속에 대회를 마감하며 세계 무대에서 고개를 들지 못했고 한국도 노메달의 수모를 이어가며 세계의 높은 벽을 다시 한번 절감해야했다.

▲기록 부진 마이클 존스(미국) 등 슈퍼 스타의 은퇴와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선수들의 고령화는 심각한 기록 가뭄 현상으로 이어졌다.

8회째를 맞은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세계기록이 나오지 않았던 때는 97년 아테네대회와 이번 대회 둘 뿐.

트랙에서는 남자 100m의 그린만이 세계기록에 근접했고 필드에서는 여자 장대높이뛰기의 스테이시 드래길라(미국)와 스베틀라나 페오파노바(러시아)만이 세계기록에 도전했을 뿐 나머지 종목은 세계기록과는 큰 차이를 둔 채 승부가 갈렸다.

스타의 부재와 기록 부진은 관중 감소로 그대로 나타나 개막식을 제외하고는 단 한번도 만원을 기록하지 못했다.

▲첫 북미 대회, 절반의 성공 91년 도쿄 대회 이후 10년만이자 사상 두번째로 유럽 대륙을 벗어나 치러진 대회는 절반의 성공으로 끝났다.

새천년 첫 대회를 맞아 새 회장이 취임하고 개막식에 남자 마라톤을 배치하는 등 변화를 꾀한 이번 대회는 유럽에 비해 육상에 대한 관심이 떨어지던 북미 대륙에 새로운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운영 미숙으로 인한 어이없는 실수로 월드컵 축구에 이은 단일 종목 최대 이벤트라는 권위에 먹칠을 하기도 했다.

남자 100m에서는 풍속 측정기기의 작동 오류로 세계주니어신기록을 비롯한 일부 예선 기록이 인정되지 못했고 여자 장대높이뛰기에서는 높이 조정을 잘못해 혼선을 빚기도 했다.

12일 열린 남자 400m 계주 예선에서는 경기가 끝나고 한참 뒤에야 미국팀의 실격을 발표했다가 미국팀의 거센 항의에 부딪히자 이를 한시간만에 다시 철회하는 촌극까지 벌어졌다.

또한 약물 문제도 여전해 개막 이전부터 금지약물 양성 반응을 보인 예고로바의 출전 문제로 큰 파장을 일으키더니 캐나다 여자 100m 챔피언 베놀린 클라크 등 대회 기간 내내 약물 파동이 끊이지 않았다.(에드먼턴=연합뉴스) 이정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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