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리그 욕보이는 더러운 ‘입’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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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한국시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첼시-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경기에서 주심을 맡은 마크 클래턴버그(왼쪽에서 셋째). 클래턴버그는 이날 경기에서 첼시의 존 오비 미켈에게 인종차별의 의미가 담긴 언어를 사용한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런던 AP=연합뉴스]

박지성(31·퀸스파크 레인저스)에게 인종차별적 구호를 외친 영국 축구팬이 법의 심판을 받게 됐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은 6일(한국시간) ‘지난달 22일 열린 퀸스파크 레인저스(QPR)와 에버턴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경기 도중 박지성을 비하하는 발언을 한 에버턴 팬 윌리엄 블라이싱(41)이 5일 인종차별금지법 위반 혐의로 영국 검찰에 기소됐다’고 보도했다. 블라이싱은 박지성이 공을 잡자 “칭크를 쓰러뜨려라(Take down that chink)”라고 소리쳤다가 현장에서 체포됐다. ‘칭크(chink)’는 china 혹은 청(淸)나라를 뜻하는 말로 중국인을 비하하는 단어다. 일반적으로 중국인뿐 아니라 동아시아인들을 지칭하는 속어로 쓰인다.

 블라이싱은 “욕을 한 사실은 인정하지만, 인종차별은 아니었다”면서 “나 말고도 현장에 있던 4000명의 축구팬이 같은 말을 했다”고 항변했다. 블라이싱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축구장에 인종차별이 만연해 있다는 얘기가 된다.

 인종차별은 팬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AP통신은 6일 ‘잉글랜드 프로경기 감독관위원회가 인종차별 논란을 야기한 마크 클래턴버그 심판에 대해 당분간 프리미어리그 경기를 배정하지 않기로 했다’고 전했다. 클래턴버그는 지난달 29일 열린 첼시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경기 도중 나이지리아 출신의 첼시 미드필더 존 오비 미켈(25)에게 ‘부적절한 언어’를 사용한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지동원(21·선덜랜드)은 지난해 9월 첼시와의 원정경기에서 후반 종료 직전 동점골을 터뜨린 직후 TV 해설자가 ‘리틀 칭크 오브 라이트(little chink of light)’로 지칭해 본의 아니게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의역하면 ‘선덜랜드의 어린 동양 원숭이’쯤 된다. 2010년에는 스코틀랜드 셀틱 소속이던 기성용(23·스완지시티)도 세인트존스턴과의 원정 경기 도중 공을 잡을 때마다 상대 팬들이 일제히 원숭이 소리를 내는 불쾌한 상황을 겪었다. 이영표(35·밴쿠버)도 유럽 무대를 누비던 시절 숱하게 인종차별을 경험했다. 그는 지난해 11월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솔직히 말해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들이 우월하다는 생각이 착각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면서 “인간의 교만한 죄성(罪性)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한 바 있다.

 스포츠심리학을 전공한 박해용(55) 호남대 축구학과 교수는 “인종차별은 약한 사람을 핍박해 스스로를 높이려는 심리에서 기인한다”면서 “축구 종주국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한 영국인들은 타 인종이나 민족이 축구를 잘할 경우 강한 적대감을 느낀다”고 분석했다.

박 교수는 인종차별 근절 방안에 대해 “훌리건(축구장에서 난동을 부리는 축구팬)들에게 가장 가혹한 처벌은 경기장 출입을 금지하는 것”이라면서 “경찰뿐만 아니라 영국축구협회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아울러 경기 시작 전에 장내방송 등을 통해 관련 행위에 대해 엄중 경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송지훈·박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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