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야한 남자가 좋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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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담론서 『나는 미소년이 좋다』의 출현은 하나의 '징후' 로 읽어야 한다. 그 징후란 우리 사회의 엄숙주의 풍토가 막아왔던 '여성들의 성적 취향 능동적으로 드러내기' 가 공적 출판물 형태로 일반화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현대여성들의 변화하는 감수성을 보여주는 이 책은 1990년대 마광수의 목소리와 비슷하기도 하면서도 또 다르다.

마광수가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고 선언했다면, 젊은 여성 남승희(30) 는 이렇게 토로하고 나선다. '나는 야한 남성이 좋다' . "헤픈 여자 소리를 들을 각오를 하고 썼다" 는 이 책은 실은 예고된 '사건' 인지도 모른다.

보다 더 솔직하게 드러내놓고 있다는 차이점이 있을 뿐, 『로마인 이야기』의 작가로 남성연구서 『남자들에게』(한길사) 를 펴낸 시오노 나나미,『남자, 당신은 흥미롭다』(한길사) 를 펴냈던 여성 건축가 김진애의 문제의식과 너무도 닮은꼴이기 때문이다.

책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어휘는 단연 '색(色) ' 이다. 따라서 책 제목을 『나는 색이 좋다』로 바꿔도 문제가 없을 듯하다.

색이란 저자의 정의에 따르면 "인간을 강렬하게 충동질하는, 관능적 쾌락을 일으키는 모든 물질적인 것, 육체적인 것" (2백3쪽) 을 포괄적으로 지칭한다.

이렇게 밝히고 나면 당장 남성(고루한 보통 남성들이기 십상이다) 과 여성(당연히 페미니즘 열혈여성들이다) 의 양쪽에서 돌멩이가 날아들 판이다.

저자가 이때 뽑는 재반격의 카드는 이렇다. "아름다운 남자를 보고 매혹적이라며 달라드는 여성들이야말로 자기의 본성을 따라 남성의 색을 추구하는 행위를 하는 것이다.

변화되는 이 물결과 달리, 여성들이 남성들 색의 대상이 되는 현재 세상이란 그 뒤에서 남자가 힘을 독점하는 잘못된 세상이다. "

저자는 이를 맞불작전이라고 부른다. 남성을 성적 이미지로 충분하게 대상화하는 것이 허용돼야 비로소 남녀는 서로를 솔직하게 욕망할 수 있고, 존중 가능하다는 것이 저자의 지론이다. 이런 주장은 이미 현실 속에 등장한다.

컴퓨터 게임 속의 남녀 캐릭터들은 '미소년화된 남성' '터프한 여성상' 으로 일반화되고 있다. 저자가 "너무 예뻐서 한숨만 나온다" 고 털어놓은 그룹 y2k의 유이치 군과 미국 대중가수 리키 마틴도 '미소년' '야한 남자' 의 사례다.

마광수의 성담론이 그러하듯, 그의 대학시절 제자인 문화비평가 남승희의 이번 책도 실은 강력한 전복성을 갖고 있다.

세대간, 남녀간 유연성이 부족하고 대화가 막힌 우리 사회의 굳은 껍질 내지 획일성에 대한 도전이기 때문이다. 사실 저자도 이 점을 의식하고 있다.

"우리는 획일적인 문화를 복제할 것을 거부하고, 자기 스타일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남의 눈, 가족의 기대, 또래 문화 등이 인간의 다양성을 재단하고 있지만, 그런 것은 갖다버려도 좋다.

스스로 자기의 모습과 향기를 결정할 때 그 사람은 자기 스타일을 가진 것이다. 그는 어른이고, 젊고, 아름답다. " (2백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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