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김지하 "안철수 하는 걸 보니 기대 못 미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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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에서 만난 시인 김지하씨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측에서 자신에게 국민대통합위원장을 맡아달라고 다섯 차례나 찾아왔었다고 공개했다. [사진 JTBC]

시인 김지하(71)씨가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로부터 국민대통합위원장 제의를 받았으나 거절한 내막을 털어놨다. 김 시인은 5일 방영된 JTBC의 뉴스9 ‘출동인터뷰’에 출연해 친구인 김중태(박근혜 캠프 통합부위원장)씨가 자신에게 위원장을 맡아달라고 요청하기 위해 5차례나 찾아왔었다고 공개했다. 그러나 “난 시인이야, 꺼져. 정치는 너나 잘해”라고 돌려보냈다고 말했다.

 당시 김 시인은 김씨에게 “박 후보는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보다 어머니 육영수 여사를 닮은 부드럽고 따뜻한 정치를 해야 하며, 여성 대통령론을 내세워야 된다”고 말해줬다고 한다. 또 “과거(5·16과 유신)에 대해 잘못했다고 분명하게 선을 그어 아버지를 벗어나야 한다”고도 조언을 해줬다는 것이다.

 김 시인은 그 뒤 박 후보가 유신이 잘못됐다고 사과하고 여성 대통령론을 강조하더라면서, “도움을 줄까” 생각했으나 부인 김영주씨가 말려 접었다고 소개했다. 다음은 허남진 대기자와의 일문일답.

 - 대선 정국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시끄럽고 지루하기만 해요. 복지다, 경제민주화다 이런 건 이미 누구나 알고 있는 당위(當爲) 아니요. 그런 마땅한 이야기들을 매일 인상쓰며 떠들고 있으니. 너 밥 먹어야 한다는 걸 매일 떠드는 것과 마찬가지야. 그걸 몇 달째 떠들고 있으니 지루한 거지.”

 - 새로운 비전 제시가 없다는 말씀으로 들리는데, 그런 중에도 대통령으로서의 바람직한 자질을 꼽자면 뭔가요.

 “김구 선생 말씀이 떠올라요. 테러리스트인 그 분이 문화가 중요하다고 하셨잖아요. 문화적 소양과 능력이 있는 사람이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 지난 7월 중앙SUNDAY와의 인터뷰 땐 안철수 후보가 가장 자질이 뛰어나다고 했는데. 지금도 그런가요.

 “그땐 잘 몰랐어. 촛불의 주역인 2030들이 인터넷을 통해 안철수가 괜찮은 사람이라 하고, 그게 4060으로 이어져 박원순 시장을 탄생시키고, 그래서 뭐가 있겠구나 생각했지. 촛불에서 기대하는 것처럼, 바이러스 치료하는 것처럼, 우리나라에 필요한 자질이 있겠구나, 세계적 확장 융합과 민족적 절제의 리더십의 가능성을 가진 걸로 봤는데, 정작 후보가 돼서 하는 걸 보니 깡통이야. 무식하단 뜻이 아니고 그런 거랑 거리가 멀다, 기대에 못 미친다 이 말씀이예요.”

 - 박근혜 후보가 직접 찾아오겠다고 했다면서요.

 “원주에 오면 제일 먼저 박경리 동상에 인사하고, 베론성지로 가서 지학순 주교 묘소에 참배하며 유신이 잘못됐다는 거 사과하고, 그 다음에 우리 마누라한테 그동안 고생시킨 거 미안하다고 해야 한다. 그런 뒤 만나달라면 그때 판단하겠다고 했지. 유신 때 내가 중앙정보부 지하실에서 고문 당하고, 우리 식구 고통 당한 것, 그런 걸 그냥 말로만 미안하다고 하면 되나.”

 - 그런데 어떻게 입장이 바뀌었나요.

 “무엇보다 이 시절이 여성의 시대야. 여성 리더십이 필요한 시대란 말이요.”

 - 박정희 대통령과는 화해했습니까.

 “내가 용서한 적 없어요. 다만 지금은 욕은 안 해. 박 대통령도 이 민족 밥 먹게 하려고 애쓰고, 산에 푸른 나무 들어서게 하려고 애썼다고 할 뿐이지.”

 인터뷰는 4일 오후 원주시 단구동에 있는 박경리 문학공원 내 ‘집필실’에서 2시간여 진행됐다.

원주=이성대 JTBC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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