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문학상 후보작] 송수권 '우포늪엔 악어가 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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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수권은 추천된 시인 중에서 가장 많은 추천 작품 목록을 가진 시인이다. 그의 작품은 무려 아홉 편이나 추천 대상에 올랐다. 그만큼 많은 추천인들이 그의 작품을 다양하게 좋아했다는 뜻이다.

이런 와중에서, 최고를 고르는 일은 여간 어렵지 않다. 최종 추천작인 '우포늪엔 악어가 산다' (21세기 문학, 2001년 봄호) 외에도 그의 미학적 성취를 보여주는 작품들은 많다. '여운(餘韻) ' , '내 사랑은' (내일을 여는 작가, 2000년 겨울호) 등은 생태 및 생명 현상에 대한 성찰이 돋보인다.

'철도원' (현대시, 2001년 3월호) 은 초라한 직업인의 내력에 대한 이야기체의 보고를 통해 비판적인 사회의식을 보이고 있고, 남북문제를 우리 삶의 주요한 화두로 삼는 일련의 좋은 시편들도 있다. 시인의 관심사가 다양하다는 뜻이기도 하겠고, 거기에 따르는 미학적 성취도 역시 일정한 수준에 오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겠다.

그러나 최종 추천작이 송수권의 다양한 미덕을 아무래도 가장 잘 보이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우포늪은 생태계의 보고(寶庫) 로 알려진 곳이다. 고대 왕국 가야 시절부터 있었던 곳. 인간의 손을 타지 않은 살아 있는 자연사의 보고로 평가되는 이곳에 어느 순간 위험이 다가온다. 물론 사람들에 의한 환경 파괴 때문이다.

하지만 시인은 작품 속에서 이를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그는 파괴의 상징물로서 악어를 등장시킨다. 악어는 거기에 살면서 닥치는 대로 우포늪의 평화를 파괴한다. 이 파괴 행위는 '맑은 성욕(性慾) ' 과 대비되는 '검은 성욕' 의 이름으로 표현된다.

그리하여 우포늪의 생태 훼손은 자연 대 인간의 대결 구도가 아닌 상반된 성욕의 대결 구도로 바뀐다. 이 대목에서 독자들은 시적 상상력의 독특함을 맛볼 수 있다.

독자들은 어쩌면 자신들 속에 내재한 검은 성욕의 악어를 한번쯤 떠올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생명을 죽여 부패하게 만드는 우포늪의 상황은 현대사회가 직면한 위험에 대한 상징적 재현으로 읽힐 만하다. 우포늪에 악어가 산다는 시인의 메시지는 결국 우포늪의 생태 파괴의 실상을 경고하고 고발하는 수준을 넘어 현대 삶의 위기에 대한 탁월한 환유로 발전해나간다.

이무기와 용이 살던 시대, 그러리라고 믿어졌던 시대는 이미 지나가 버렸다. 대신 그 자리에 악어의 시대가 도래했다. 전설과 민담의 기운이 휘돌던 전통 농경 사회의 평화로운 늪에 이제는 살육과 파괴의 산업사회가 '검은 성욕' 의 모습으로 음험하게 다가온다.

검은 성욕이야말로 악어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가진 현대의 마왕이다. 그것은 평화로운 생명들을 이빨로 짓씹으며 온통 '한 깔자리로' 썩게 만든다. 무자비한 포식자에 의해 우포늪의 먹이사슬은 교란되며 마침내 시간의 역사, 자연의 역사도 함께 위험해진다.

이 시는 물론 이런 독법으로 읽지 않을 수도 있다. 생태 파괴에 대한 단순한 경고로 읽어도 그만이다. 그러나 추천작이 최근 우리 시단에서 모색되고 있는 일련의 생태시들과 다른 점은 아무래도 메시지의 확장력에서 찾을 수 있을 듯하다.

송수권은 생태 파괴의 문제를 개발이나 오염 등의 시각으로 보지 않고 파괴 주체의 본성의 관점에서 접근한다. 기계나 도구가 아닌 불온한 검은 성욕이야말로 인간 내면에 견고하게 자리하여 시간의 역사와 자연 생태를 위협하는 최대의 적이라고 시인은 말하고 있는지 모른다. 시인은 우포늪에 악어가 산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우리들 모두의 본성 속에 악어가 살고 있다고 경고하는 건 아닐까?

윤재웅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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