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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 떠나고, 상권은 무너지고 … 도심이 비어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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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대구 서부시장은 한때 서문·칠성시장과 더불어 대구시내 3대 시장으로 꼽혔다. 하지만 현재는 낡고 지저분한 데다 주변에 대형마트까지 들어서면서 급속한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건물 벽엔 커다랗게 금이 가 있고 페인트는 흉물스럽게 벗겨져 있다. [대구=프리랜서 공정식]

세월이 흐르면 인간처럼 도시도 늙는다. 인간이 운동을 하고 영양 보충을 하듯 도시도 활력을 되찾기 위한 방안이 필요하다. 하지만 중소도시는 물론 대도시의 구도심은 이런 관심에서 멀어져 있다. 1990년대 이후 구도심은 산업·상업시설이 떠나면서 황폐화됐다. 그런데도 지자체는 신도시 건설에만 힘을 쏟고 있다. 경기악화 탓에 재개발·재건축도 별 도움이 안 된다. 전문가들은 구도심이 살아야 도시가 균형 있게, 건강하게 발전한다고 말한다. 구도심을 다시 활기차게 살릴 방안을 3회에 걸쳐 찾아본다.

지난달 30일 오전 부산시 동구 범일5동 매축지마을. 한 사람이 겨우 다닐 수 있는 좁은 골목 안으로 지붕을 잇댄 집들이 다닥다닥 이어졌다. 한 시간여를 다녔지만 사람을 만나기 어려웠다. 현관에 자물쇠를 걸어놨거나 합판으로 입구를 막은 빈집이 태반이었다. 이 동네에서 50년간 세탁소를 해왔다는 이모(71·여)씨는 “예전에는 인근 공장에서 나오는 작업복 세탁 등 일거리가 넘쳤다”며 “하지만 공장과 사람이 떠나면서 황량한 동네가 됐다”고 말했다.

 범일 5동은 동구의 14개 동 가운데 면적이 가장 넓다. 1930년대 일본이 부산항 배후 물류기지로 사용하기 위해 매립한 지역으로 80년대까지만 해도 부두와 공장 근로자들로 북적였다. 하지만 90년대 중반 이후 공장이 하나 둘 문을 닫으면서 동네는 쇠락했다. 여기다 개발이익을 노린 외지인들이 대거 집을 사들이면서 원주민들도 떠나기 시작했다.

 98년 기준으로 5000여 가구, 1만여 명이 살았지만 지금은 절반으로 줄었다. 이계철(55) 범일5동 동장은 “민간이 추진해온 재개발도 22년이 넘도록 아무 진척이 없다”고 설명했다.

 대구시 서구 비산동의 서부시장도 마찬가지다. 80년대까지 서문·칠성 시장과 함께 대구시내 3대 시장으로 꼽힐 정도로 번성했지만 지금은 적막감만 감돈다. 줄지어 서 있는 2층짜리 상가 벽면은 곳곳에 금이 가 있고 페인트칠도 흉하게 벗겨져 있다. 504개 점포 중 100여 곳만 문을 열고 있다. 최장성(66) 상가번영회장은 “시장이 너무 낡아 마치 전쟁 직후 피란민촌 같다”고 말했다.

 70∼80년대 명실상부한 도시의 중심이었던 ‘구(舊)도심’이 무너지고 있다. 주거시설이 노후화된 데다 상업 기능까지 위축되는 ‘복합형 공동화’로 황폐화되고 있다. 나주(전남)·밀양(경남)·동해(강원) 같은 중소도시는 물론 부산·대구·인천 같은 대도시도 예외는 아니다.

 이 같은 공동화는 구도심을 지탱해 오던 섬유 등 노동집약적 산업이 90년대 이후 외곽이나 해외로 빠져나간 탓이 크다. 섬유산업으로 번성하던 대구·마산(현 창원)의 도심이 급격히 위축된 게 대표적인 사례다. 목원대 장수찬(행정학) 교수는 “지자체들이 신도시 개발에만 치중한 것도 도심 공동화를 부추긴 한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구도심을 살릴 일반적인 방법으론 재개발이나 재건축이 거론된다. 하지만 수익을 내야만 하는 재개발·재건축은 요즘처럼 부동산 경기 전망이 비관적인 상황에서는 꺼내기 힘든 카드다. 인천은 부동산 경기가 좋던 2006~2007년에만 정비예정구역 300여 곳이 지정됐지만 상당수가 사업을 포기하고 현재는 150여 개만 남았을 뿐이다. 게다가 기존 재개발·재건축은 대규모 철거로 인한 서민주택 감소, 원주민의 낮은 재정착률 같은 여러 문제점도 노출돼 있다. 김성완 토지주택연구원 도시재생사업단장은 “이제는 도심을 경쟁력 있게 살릴 수 있는 새로운 도시 재생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며 “관련 재정과 조직을 통합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도시정비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별취재팀=윤창희·강병철·황정일·홍권삼(대구)황선윤(창원)·장대석(전주)·위성욱(부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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