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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만에 돌아온 '지옥의 묵시록'

중앙일보

입력

영화 '지옥의 묵시록' 이 돌아온다(31일 개봉 예정) . '지옥의 묵시록 : 리덕스' 다. '리덕스(Redux) ' 는 명사 뒤에 붙어 '돌아온' 이란 뜻으로 사용되는 형용사다.

'대부' 시리즈로 유명한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62) 감독이 1979년 선보인 '지옥의 묵시록' 은 베트남전을 소재로 인간의 선악 문제를 천착한 걸작.

발표 당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며 전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말론 브란도.마틴 쉰.로버트 듀발.해리슨 포드 등 당대 스타들이 총출동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지난 5월 칸영화제에서도 '지옥의…' 는 화제의 중심이었다. 칸은 22년만에 신판을 들고 나온 코폴라에게 열광했다. 그리고 칸이 코폴라를 재초청한 것은 현명한 결정으로 판정났다. 전작보다 주제 의식이 깊어지고 화면 구성 또한 크게 나아졌기 때문이다.

디렉터스 컷이란 용어가 있다. 특정 영화의 극장 개봉이 완료된 후에 감독 자신이 흥행성 등을 고려해 일반 상영분에서 포기했던 내용.장면을 추가해 재편집한 작품을 가리킨다.

최근엔 공포영화의 고전으로 꼽히는 '엑소시스트' (윌리엄 프데드킨 감독) 의 디렉터스 컷이 호응을 얻었다.

하지만 코폴라 감독은 이번 작품이 디렉터스 컷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재탄생' '결정판' 이란 단어를 썼다.

재정 압박.시간 부족.흥행 부담 등으로 급하게 마무리했던 원작을 완전히 새롭게 만들었다고 자부했다. 79년판이 전쟁의 무용담을 앞세운 액션영화에 가깝다면 이번엔 전쟁의 비인간성.집권층의 위선 등을 비판한 철학영화라는 것이다.

신작 '지옥의…' 의 얼개는 원본과 크게 다르지 않다. 베트남.캄보디아 국경에서 독재 군주 비슷하게 군림하고 있는 커츠 대령(말론 브란도) 을 제거하라는 특수 임무를 부여받은 윌러드 대위(마틴 쉰) 가 커츠를 찾아 강줄기를 올라가면서 겪는 사건들이 중심을 이룬다.

상영시간은 3시간 16분. 79년판보다 49분이나 늘어났다. 하지만 지루하다는 느낌이 끼어들 틈은 거의 없다. 베트콩을 급습하는 미군 헬리콥터 등 전투 장면이 스크린을 압도하고, 미국이라는 국가의 이익을 위해 수없이 죽어가는 민간인들을 통해 전쟁의 무모함을 비판한다.

2001년판 '지옥의…' 에는 크게 네 장면이 보강됐다.

첫째, 윌러드 대위가 지독한 파도타기광인 킬고어 대령(로버트 듀발) 의 서핑보드를 훔치는 장면. 킬고어는 서핑보드를 찾기 위해 베트남 민간인촌을 무자비하게 공습한다. 서핑보드 하나와 사람의 생명이 교환되는 전쟁의 아이러니….

둘째, 윌러드 일행과 플레이 걸들의 재회. 일선 미군병사들에게 위문공연을 하는 플레이 걸들이 탄 헬기의 연료가 떨어지자 윌러드 일행은 그들에게 연료를 주되 그 대가로 몸을 요구한다. 미국 소녀들도 전쟁의 희생양이라는 메시지….

셋째, 프랑스 농장 가족들과의 만남. 베트남에서 70년 동안 고무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프랑스인들이 "당신들 미국인들이 역사상에서 가장 헛된 전쟁을 하고 있다" 고 공격한다. 그 틈에서도 아편을 함께 먹고 살을 섞는 윌러드와 프랑스 과부의 모순….

넷째, 커츠 대령이 윌러드에게 전쟁에 관한 미 시사주간지 타임의 기사를 읽어주는 부분. 전선의 병사들은 더없이 지쳐가는데 전세는 미국에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내용이다. 실제 상황을 정반대로 악용하는 위정자들의 사기극….

'지옥의…' 는 화면만 요란했던 올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과 뚜렷하게 구별된다. 컴퓨터가 만들어내는 현란한 특수효과는 없지만 인간과 사회에 대한 고민을 장엄한 영상에 담아내는 거장의 손길이 살아 있다.

코폴라 감독은 그가 개인적으로 소유하고 있던 원본 필름 2백만피트를 일일이 재검토했다. 디지털 작업을 통해 원본의 색감과 배경음악도 더욱 풍부하게 되살렸다. 손바닥만한 음반 하나에 영화 제작의 모든 것을 담아내는 DVD의 출현으로 2001년판을 내놓을 자신감을 얻었다는 발언도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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