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시즌에 통한 ‘빅볼’ 야구, 단기전엔 먹통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95호 19면

이만수(54·사진) SK 감독이 또 한번 고개를 떨궜다. 감독 부임 첫해 팀을 정규시즌 2위로 이끈 지도력은 인정받았다. 하지만 2년 연속 한국시리즈(KS)에서 삼성에 패하며 준우승에 그쳤다. 이 감독은 내년 시즌부터 우승이라는 숙제를 안게 됐다.

이만수 감독은 왜 준우승에 그쳤나

◆부임 첫해 플레이오프 직행 성과=이 감독은 지난해 감독 대행으로 SK를 맡는 순간부터 전임 김성근 감독(현 고양 원더스 감독)과 비교됐다. 김 전 감독은 SK의 4년 연속 포스트시즌(PS) 진출을 이끌며 우승 3회, 준우승 1회를 이뤄낸 명장이다. 이 때문에 이 감독이 경기를 질 때마다 팬들로부터 ‘김성근 감독이었다면…’이라는 질책을 받곤 했다.

하지만 이 감독은 과감히 자신의 방식으로 팀을 이끌었다. 메이저리그 시카고 화이트삭스에서 코치 생활을 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 감독은 장타력을 중시하는 메이저리그식 ‘빅볼’을 추구했다. 김 전 감독이 추구한 번트·도루 등 세밀한 작전을 중시하는 일본야구식 ‘스몰볼’과 차이가 많을 수밖에 없다.

이 감독의 스타일에 선수단은 빠르게 적응했다. 올 시즌 SK는 팀타율 4위(0.258)임에도 팀홈런이 1위(108개)다. 팀타점(523개)과 팀득점(564개)에서 모두 2위일 정도로 한 방을 중시하는 공격력의 팀이 됐다. 지난해 SK는 팀홈런 3위(100개)·팀타점 5위(561개)·팀득점 5위(584개)였다. 다양한 작전으로 점수를 얻어낸 뒤 마운드의 힘으로 지키는 팀이었다. 그러나 이 감독의 공격력 중시는 마운드 약화를 불러왔다. 지난해 2위(3.59)이던 팀평균자책점은 4위(3.82)로 떨어졌다. 포스트시즌(PS) 진출팀 중 꼴찌다. 더구나 이 감독은 시즌 내내 부상 걱정을 해야 했다. 김광현과 송은범, 외국인투수 마리오 등 대부분의 주전투수들이 2군으로 재활을 다녀왔다. 다행히 이 감독의 스타일이 정규시즌에서는 통했다. 하지만 단기전에서 문제점을 드러냈다.

◆단기전, 승부수의 묘책은 절실=단기전은 타선보다 마운드가 중요하다. 벤치의 세밀한 작전도 필요하다. 이 감독이 또 한번 준우승에 머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감독이 SK에 심은 ‘빅볼’은 PS에서 독이 됐다.

적극적인 공격으로 타자들의 초구 공략이 많아지면서 공격 흐름이 끊기기 일쑤였다. 득점 상황에서도 세밀한 야구가 이뤄지지 못했다. 한국프로야구 최강을 자랑했던 탄탄하던 수비도 무너졌다.

단기전에서 치밀한 전력과 전술이 필요했지만 이 감독이 추구하던 야구 스타일과 차이가 나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마운드 운용에 어려움이 많았다. 롯데와의 플레이오프(PO) 2차전 4-1이던 7회 초 엄정욱을 기용한 뒤 역전패하면서 PO와 KS의 투수진 운용 계획이 어긋났다. 이후 엄정욱은 KS 마운드에 오르지 못했다. 또 거침없는 성격 탓에 경기 뒤 팀의 전력과 전술을 공개했고, 선수들의 작전수행능력 부족을 질책하면서 감독과 선수단 사이에 미묘한 괴리감이 생겨났다.

◆‘양날의 검’이 된 세리머니=이 감독은 경기 중 큰 동작의 세리머니를 펼친다. 주위 시선에 개의치 않고 자신의 감정표현을 거침없이 하는 것은 선수 시절부터 유명했다. 이 감독은 PS에서도 숱한 세리머니를 펼쳤다. 이는 선수단에도 전이됐다. 선수들은 경기 중 큰 동작의 세리머니로 팀 기운을 북돋웠다. 김광현 등 투수들은 마운드에서 환호했고, 박재상 등 타자들은 더그아웃 앞에서 이 감독의 ‘헐크 세리머니’를 패러디했다. SK의 4번 타자 이호준은 “세리머니가 팀에 주는 효과가 상당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러한 세리머니는 상대의 투쟁심을 자극했다. KS에서 삼성 선수들은 SK 선수들의 세리머니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이는 삼성 선수들의 경기 집중력을 높이는 역효과를 냈다. 삼성의 장원삼과 최형우는 “승패와 상관없는 세리머니가 신경 쓰인다”며 “그런 모습을 보지 않으려면 우리가 잘해야 한다”고 했다. 장원삼은 KS에서 2승을, 최형우는 2홈런 9타점으로 맹활약하며 우승 주역이 됐다. 참 아이러니한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이제 이 감독은 새로 팀을 꾸려야 한다.
올 시즌 마무리로 30세이브를 올린 정우람이 군입대를 하며 뒷문에 구멍이 생겼다. 자유계약(FA) 등으로 전력 누수도 예상된다. 이 감독은 내년 시즌 다시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