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Sunday] 응답하라, 적립식펀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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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5호 31면

“적립식펀드의 시대가 저물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인가.” 미래에셋 구재상 부회장이 2일 사의를 표했다는 인터넷 뉴스에 한 네티즌이 남긴 댓글이다. 그도 그럴 만한 것이 구 부회장은 2000년대 중반 국내에 적립식펀드 열풍을 몰고온 주인공이었다. 주식 펀드매니저인 그는 “주식형펀드에 적립식으로 투자하는 게 가장 좋은 투자법”이라고 설파했다. 이런 메시지는 샐러리맨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실제 월 50만~100만원씩 넣어 연 20~30%의 수익을 낸 사례가 많았다. 이 때문에 적립식펀드는 샐러리맨들에게는 가장 든든한 재테크 수단으로 통했다.

그런데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상황이 180도 바뀌었다. 주가 급락으로 펀드 수익률이 고꾸라지자 샐러리맨들은 적립식펀드를 외면했다. 금융회사들도 저성장·저금리라는 뉴노멀(New Normal·새로운 기준)을 받아들여야 한다며 주식형 펀드보다는 연 7% 안팎의 수익을 추구하는 ‘중위험·중수익 상품’ 판매에 주력했다. 주가연계증권(ELS), 브라질 채권, 즉시연금 등과 같은 것들이다. 이런 상황에서 주식 전문가인 구 부회장의 위상은 줄어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문제는 금융시장에서 구 부회장과 같은 주식 펀드매니저의 입지가 좁아질수록 샐러리맨들의 재테크 미래는 어두워진다는 것이다. 요즘 인기 있는 중위험·중수익 상품은 대부분 목돈을 한번에 맡기고 굴리기에 좋은 상품이기 때문이다. 돈을 버는 것보다 지키기 위한 것이다. 한 푼이라도 더 모아야 하는 샐러리맨들이 월급을 쪼개 다달이 투자하는 수단으로는 적합하지 않다. 이렇다 보니 요즘 샐러리맨들은 0.1%라도 금리를 더 주는 은행 적금을 찾아 혈안이 돼 있다. 일부는 고수익을 노리고 코스닥 정치테마주에 뛰어들었다 투자 원금을 모두 날리기도 한다.

적립식펀드가 수익만 제대로 낸다면 샐러리맨들이 테마주에 투자할 이유가 없다. 아직도 상당수 샐러리맨들은 적립식펀드를 가장 좋은 재테크 수단으로 꼽는다. 적립식펀드의 시대가 결코 끝날 수 없는 이유다. 하지만 요즘엔 막상 투자하려고 보면 매력이 느껴지는 펀드가 별로 없다는 이가 많다. 국내 대형 적립식펀드들의 투자전략은 대동소이하기 때문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전의 전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삼성전자·현대자동차 등의 대형주나 중국·브라질 등의 신흥 경제대국에 집중 투자하는 펀드 일색이다.

결국 다시 한번 적립식펀드 붐이 일려면 경제 환경 변화에 맞춰 펀드 투자 전략이 바뀌어야 한다. 더구나 지금처럼 주가가 횡보할 땐 자신만의 색깔을 가진 펀드가 수익 내기에 유리하다. 그런 측면에서 최근 몇몇 가치투자펀드, 기업지배구조펀드에 자금이 유입되는 건 주목할 만하다. 투자자들은 이미 펀드의 갈 길을 제시했는지 모른다. 이제 어떻게 변할지 대형 적립식펀드들이 대답할 차례다. 응답하라, 적립식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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