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샹의 예술인생 소개한 '…친구들' 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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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미술인가. 20세기 전위미술의 선두주자 마르셸 뒤샹(1887~1968) 은 1917년 뉴욕의 한 전시회에 직접 작가 사인을 한 변기를 당당히 출품하면서 "일상용품과 예술품의 경계는 없으며, 예술가들만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라고 미술의 기존 개념을 뒤흔들었다.

"전시란 예술가 자신이 무엇이 작품인지를 결정하는 것" 이라는 그의 주장은 엄숙주의 미술에 날린 강펀치이자 '순수한' 모더니즘에 대한 '불순한' 도전장 놓기였다.

『뒤샹과 친구들』은 15년 뉴욕으로 거처를 옮긴 후 50여년 동안 그의 예술에 얽힌 행적을 그리고 있다. 그의 시도는 실로 기이했다. 걸상 위에 자전거 바퀴를 올려놓았고, 복제품 '모나리자' 의 얼굴에 콧수염을 그려넣었다.

이를 통해 물건을 조립하거나 기성품(ready-made) 을 그대로 내놓는 것도 작품이 될 수 있음을 주장했다.

그는 미술사학자 피에르 카반느의 말처럼 "미술사에서 최초로 회화라는 개념을 부인한 사람" 이었다. 이러한 뒤샹의 행위가 다다이즘.팝 아트.초현실주의 등 다양한 사조에 영향을 끼쳤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존 케이지.재스퍼 존스.로버트 라우셴버그.앤디 워홀 등이 바로 저자가 소개하는 '뒤샹의 후예들' 이다.

사진작가 만 레이, 화가 스티글리츠와 오키프 부부, MOMA(뉴욕 현대미술관) 초대관장인 앨프리드 바 등 이 책에 언급된 사람들만 해도 5백명을 훌쩍 넘는다. 각종 문헌을 참고해 이들과 뒤샹의 개인적 인연까지 서술한 저자의 노력은 존경을 표할 만하다.

뉴욕뿐 아니라 당시 유럽 미술의 상황까지 두루 짚어주고 있는 점도 흥미를 끈다. 뒤샹의 주요 작품 62점을 포함, '친구들' 의 작품 3백여컷의 도판이 실리는 등 내용이 충실하다.

현대 미술의 '줄기' 를 훑고 싶었어도 딱딱한 이론서나 낯간지런 인상 비평이 싫어 머뭇거렸었다면 일독을 권한다.

72년부터 뉴욕에 거주해온 저자는 그간 『폴록과 친구들』 『워홀과 친구들』을 펴냈으며, 이 책에 이어 『백남준과 친구들』을 마지막으로 뉴욕을 중심으로 한 세계 미술의 패러다임을 소개하는 작업을 마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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