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역대 월드컵 감독들의 조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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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부터 네차례 연속 월드컵 본선무대를 밟았으나 1승도 거두지 못한 한국축구. 2002 한.일월드컵을 3백일 앞두고 역대 월드컵대표 감독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월드컵 16강 염원과 아쉬웠던 순간들을 알아본다(차범근 98프랑스월드컵 감독은 답변 거부).

<질문 내용>

1.당시 대표팀이 월드컵에서 1승을 거두지 못한 이유

2.D-3백때 어떤 점에 가장 신경썼나

3.역대 월드컵팀 중 어느 팀이 가장 강하다고 생각하나. 현 대표팀의 전력은

4.현 대표팀에 대한 조언

▶▶▶ "현 대표팀이 사상 최강" 86 김정남 감독

1.세계 축구를 너무 몰랐다. 상대 팀에 대한 전력 분석이란 말조차 생소했다. 이탈리아 대표팀 경기는 현지에 가서 처음 봤다. 그게 당시 한국 축구의 정보력이었다. 그저 월드컵에 출전했다는 사실만으로 기뻤으나 각종 국제대회를 회상해 보니 외국팀에 대패했던 기억만 났다. 그래서 두려웠다.

2.당시 한국은 아시아 지역예선을 치르는 중이었다. 본선 진출이 확정된 시점이 1985년 12월이었다. 대회가 86년 6월에 열렸으니 'D-300' 때는 지역예선 통과만이 최대 현안이었다. 히딩크 감독이 장.단기 플랜을 세워 잘 준비할 것이다. 다만 세계적인 강팀들을 만나 먼저 실점한 뒤 만회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상대방의 머리를 읽는 수비를 해야 한다. 남은 기간 중 이 부분을 집중적으로 준비하라고 조언하고 싶다.

3.현재 대표팀이 최강이다. 현 대표팀은 다양한 정보.좋은 훈련방법.발전하는 선진기술 등 여러가지 좋은 여건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어느 때보다 세계 여러팀과 교류하고 있고, 세계적인 명장이 대표팀을 맡고 있고, 목표 달성에 대한 메리트도 크고, 온 국민의 관심과 성원을 한몸에 받고 있는 게 바로 현 대표팀이다. 선수 개개인의 기량만 놓고 본다면 86년 월드컵팀도 뛰어난 팀이지만 현재 팀이 선진 축구에 가장 근접해 있다는 점에서 최강이라고 말할 수 있다.

4.먼저 조 편성 전까지 선수들의 체력.개인기 등 전반적인 능력향상에 집중해야 한다. 전술 훈련은 그 다음이다. 상대팀이 결정되면 그들을 철저히 분석해 우리만의 승리 패턴을 만들어야 한다. 히딩크 감독은 한국 축구의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재임기간 중 한국 축구가 세계 축구로 도약할 수 있는 기틀을 만들어야 한다.

▶▶▶ "강팀들과 실전연습 중요" 90 이회택 감독

1.스페인.벨기에.우루과이 등 조 예선에서 맞붙은 세 팀 모두 선수 개개인의 체력.기술.국제경기 경험 등 모든 면에서 한국보다 한 수 위였다. 한마디로 실력이 달렸다. 월드컵 본선에 올라올 정도의 팀 중 한국보다 전력이 약한 팀은 하나도 없다고 보면 된다. 사정은 내년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준비가 부족했던 측면도 있다. 한국 축구가 특히 약한 유럽의 강팀들과 월드컵 전에 연습경기를 많이 했어야 했다. 최소한 첫 경기 2주일 전에 현지에 도착했어야 하는데 8일 전에 도착, 시차적응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었다.

2.전지훈련 등을 통해 강팀들과 많은 경기를 치러보는 게 가장 중요하다. 경기감각을 키우고 조직력을 다지는데 필수다. 지금쯤은 베스트 일레븐이 나와야 한다. 히딩크 감독도 어느 정도 구상을 끝내고 마지막 몇 선수를 점검하는 단계일 것이다. 대표 윤곽이 드러나는 대로 연습경기를 자주 가져야 한다.

3.1986년 멕시코 월드컵팀을 최강으로 꼽고 싶다. 차범근.허정무.조광래.최순호.조병득 등 대부분 현재 최고의 자리에 오른 감독들이 모두 현역으로 뛰었다. 당시 선수들은 모두 뚜렷한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허정무.최순호도 마찬가지다. 반면 지금 대표팀에선 누구 하나 확실한 주전을 찾기 힘들다. 황선홍.홍명보가 좋지만 좀 노쇠하지 않았나.

4.한국 선수들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은 역시 한국인 코칭 스태프일 것이다. 히딩크나 외국인 코칭 스태프들이 한국인 코치들의 조언이나 의견을 무시해서는 최상의 전력으로 만들 수 없다. 선수들은 외국 강팀들에 비해 부족한 실력을 끈기와 정신력으로 보강한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히딩크의 전술을 이해하려는 선수 개개인의 노력도 중요하다.

▶▶▶ "국민들 기대 책임감 갖길" 94 김호 감독

1.월드컵에서 1승을 거둘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이 아니었다. 당시에는 프로팀이 6개에 불과해 선수 수가 절대적으로 모자랐다. 프로리그에서 정기적으로 경기를 뛰면서 경험을 쌓은 선수가 큰 경기에서도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 프로팀이 선수를 체계적으로 육성할 수 있는 여건이 안됐고 선수들도 병역문제 등에 발목이 잡혀 있었다. 지역적인 문제로 인해 유럽이나 남미의 강호들과 실전을 통해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도 적었다.

2.본선에서 사용할 전술을 구상하고, 그 전술에 맞는 선수를 뽑아 집중적으로 훈련을 시켰다. 유럽과 남미 등 상대에 따라 다른 전술을 사용할 수 있도록 대비했다. 부상이나 퇴장 등 뜻밖의 상황에 의해 특정 포지션에 구멍이 생겼을 때를 대비해 '더블 포지션' 을 소화할 수 있도록 훈련시키는 데도 신경을 썼다.

3.1986년팀이 가장 강했던 것 같다. 차범근.조광래.박창선.허정무 등 포지션마다 특징있고 믿을 만한 선수가 골고루 배치돼 있었다. 32년 만의 본선 진출이라 선수들의 의욕도 매우 강했고, 좋은 선수들이 한꺼번에 배출된 시기였다.

지금 대표팀은 선수들의 경기력이 들쭉날쭉하고 몇몇 선수를 제외하고는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부족하다.

4.히딩크 감독은 나름대로 구상을 갖고 있고 그 구상대로 대표팀을 이끌고 있기 때문에 특별히 해줄 말은 없다. 대표선수들에게는 자신이 국가를 대표하고 있고, 월드컵 16강을 향한 엄청난 국민의 기대를 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부심과 책임감을 갖고 최선을 다해 준비해 주기를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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