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장애인 '홀로서기' 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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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들의 취업을 돕기 위해 만든 법이 '장애인고용촉진법' 이다. 이 법에 따르면 종업원수 3백명 이상 기업은 직원의 2%를 장애인으로 의무 고용해야 한다. 이를 못지키면 다음해 2%에 미달한 인원만큼 일정 금액을 곱한 부담금을 내야 한다.

*** 고용촉진법 있으나마나

그런데 국내 1천8백91개 대상업체 중 지난해 기준 미달로 올해 부담금을 물어야 하는 기업이 82%인 1천5백42개사에 이른다.

대부분의 대기업들이 장애인 채용을 외면하고 있다는 얘기다. 직원수는 1만명이 넘는데 장애인을 거의 안써 10억원 넘는 돈을 물게 된 기업도 있다고 한다. 이럴 수 있는가 싶지만 기업쪽 이야기를 들어보면 사정이 좀 다르다.

"우리 회사만 해도 장애인 자녀나 형제.자매가 있는 직원이 수두룩합니다. 우리도 뽑고 싶지요. 하지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

한 대기업 관리부장은 "생산라인은 물 흐르듯 흘러야지 어느 한 파트가 펑크나면 전체 작업에 차질이 생기므로 라인에 세울 순 없고, 청소 같은 잔일을 시키는 수밖에 없는데 그렇다고 월급을 특별히 적게 줄 수도 없어 인사관리상 복잡한 일이 많았다" 고 말했다.

물론 사회적 책임은 도외시한 채 자사 이익만 따지는 기업의 행태에도 문제는 있다. 그러나 기업을 비난하기에 앞서, 그들이 왜 벌금 성격의 부담금을 물고 욕을 먹으면서까지 장애인 채용을 꺼리는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종업원이 30명쯤 되는 N사. 여성으로 자수성가한 이 업체 사장은 "우린 강제고용 대상 업체는 아니지만 장애인을 고용하기로 하고 여러 복지시설에 알아 보다가 결국 포기했다" 고 했다. 주로 외국 기업과 거래를 해 영어를 어느 정도는 해야 하는데 그런 사람을 찾을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대기업들도 장애인이어서 안뽑는 게 아니라 회사에 손해가 될까봐 채용을 못할 것" 이라고 말했다.

직원의 생산성이 떨어지면 경쟁력이 약화되고, 기업은 부실해진다. 이는 국가적으로도 손해다. 세금 수입이 줄어 재정이 허약해지면 국가 발전에 필요한 사업을 벌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업에 장애인 고용을 강요하기에 앞서 장애인들이 경쟁력을 갖추도록 여건을 마련해주는 게 순서라고 본다.

무엇보다 장애인들 스스로가 자립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 이는 최근 몇주일 동안 자폐 장애인들을 취재하면서 피부로 느꼈던 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홀로서기' 는 그냥 되는 게 아니다. 본인과 부모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외부의 지원 또한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장애인 교육과 직업 훈련을 제대로 하려면 1대1 방식의 대면(對面)지도가 절실하다.

콩나물 시루 같은 교실에 잔뜩 모아 놓고 교사 한 명이 가르치는 방식으론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시설.교재도 일반 교육보다 훨씬 많이 필요해 돈이 많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 현실은 나라가 해주는 게 적으니 부담은 온통 당사자인 부모에게 떨어진다.

많은 장애인 부모들은 처음엔 결혼 패물까지 팔아 아이 치료를 시키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절망하고, 상당수는 포기하기에 이른다. 이 와중에 장애 어린이는 자생력을 갖출 기회를 잃게 된다. 그런데도 당장 급하지 않다고 해서 복지 비용은 국가의 투자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 1대 1對面지도 등 필요

장애인을 돕는 민간단체인 믿음복지회의 전청자 원장은 "장애아 한 명을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키우는 게 훗날 국가 경제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 것인지를 잘 생각해봐야 한다" 고 말했다.

부실 기업과 금융기관을 살리는 데 공적자금을 수십조원씩 쏟아부으면서 병들고 가난한 국민들의 울타리가 돼 주지 못한다면 그것은 두말할 나위 없는 정부의 직무 유기다.

더욱이 현 정부는 과거 어느 정권보다 소외 계층에 대한 배려를 강조해왔다. 차제에 21세기 복지 사회의 초석을 놓는다는 각오로 장애인 정책의 새 틀을 짜야 할 것이다.

언제까지 가족에게만 짐을 지우고, 기업에 굴레를 씌우고, 자원봉사자들의 온정에 맡길 것인가.

민병관 <산업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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