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프로야구 KS] 삐끗했지만, 그래도 이승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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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이승엽이 지난 29일 오후 인천 문학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4차전 4회 초 무사 1, 2루 상황에서 최형우의 중견수 플라이 때 주루 판단 실수로 2루에서 3루로 뛰었다가 아웃된 뒤 고개를 숙이며 허탈해하고 있다. [인천=뉴시스]

최강의 선수가 최고의 무대에서 저지른 최악의 실수였다.

 지난 29일 한국시리즈(KS) 4차전. 이승엽(36·삼성)은 0-0이던 4회 초 무사 1, 2루에서 최형우의 타구를 성급하게 안타로 판단하고 2루에서 3루로 질주했다. 하지만 공은 SK 우익수 임훈의 글러브에 들어갔고, 귀루하지 못한 이승엽은 아웃됐다. 정신적 지주의 ‘본헤드 플레이(어처구니없는 실수)’에 삼성 선수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 장면이 4차전 승부처였다. 이승엽의 주루사로 기세가 삼성에서 SK로 넘어갔다. 삼성은 흔들리던 SK 선발 김광현을 압박할 수 있었으나 오히려 기를 살려줬다. 곧이은 4회 말, SK는 박재상·최정의 연속타자 홈런을 포함한 집중타로 3점을 뽑아냈다. 이승엽도 “나 때문에 졌다. 외야 수비 위치를 확인하지 못해 무조건 안타라고 생각했다”고 자책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야구를 시작한 이승엽의 25년 야구인생 최악의 실수. 고참으로서의 책임감이 불러온 악수(惡手)였다. 이승엽은 3차전 역전패로 처진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먼저 점수를 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더구나 그의 머릿속에는 1차전 2-1이던 6회 말 2사 1, 2루에서 박한이의 좌전안타 때 2루에서 홈에 들어오지 못한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이승엽의 ‘잊고 싶은 기억’이 남은 시리즈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삼성은 이승엽이 반전 드라마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되새기고 싶어 한다. 2002년 KS에서 이승엽은 20타수 2안타로 부진했지만 마지막 타석에서 동점 3점 홈런을 때려내며 삼성에 우승을 안겼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도 예선 부진을 털고 일본과의 준결승전 역전 2점 홈런, 쿠바와의 결승전 결승 2점 홈런을 때려냈다. 반드시 수모를 되갚겠다는 이승엽의 오기가 선수단 전체에 강한 기운을 불어넣을 수도 있다.

 삼성이 2연승 후 2연패했지만 전문가들은 여전히 삼성의 우세를 점치고 있다. 하일성 KBS N 해설위원은 “5, 6차전 선발로 윤성환과 장원삼을 내보내는 삼성이 윤희상과 마리오가 나오는 SK보다 낫다”고 전망했다. 허구연 MBC 해설위원도 “여전히 투·타 모두에서 삼성이 우세하다”고 봤다. 돌고 돌아 원점에 선 두 팀은 31일 잠실 5차전에 윤성환(31·삼성)과 윤희상(27·SK)을 선발 등판시킨다. 1차전 맞대결에서 윤성환이 5와3분의1 이닝 1실점(비자책)으로 윤희상(8이닝 3실점)에게 판정승하며 승리투수가 됐다.

허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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