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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억 횡령한 여수시청 8급 … 부인 사채 빚 40여억 갚으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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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전남 여수시에서 8급 공무원이 공금 76억원을 횡령한 사건은 부인의 사채빚 수십억원을 갚기 위해 허술한 회계시스템을 이용해 저지른 단독범행이라고 검찰이 29일 밝혔다.

 광주지검 순천지청에 따르면 여수시청 회계과 공무원 김모(48·구속)씨의 부인(40·구속)은 2007년부터 사채를 얻어 급전이 필요한 사람에게 더 비싼 이자에 빌려주는 이른바 ‘사채놀이’를 하다 빚을 졌다. 상당수 채무자가 행방을 감추는 바람에 돈을 돌려받지 못했고, 결국 자신이 빌린 사채 8억원도 갚을 길이 없었다. 이후 고리 사채가 눈덩이처럼 불어 2009년 7월쯤에는 40여억원이 됐다. 부인은 채권 독촉에 시달려 정신과 치료까지 받아야 했다. 김씨는 부인의 빚을 갚기 위해 2009년부터 공금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김씨가 빼돌린 돈은 여수시상품권 회수대금 28억8700만원을 비롯해 급여(40억4700만원), 소득세·주민세(6억6500만원) 등 모두 76억20만원이었다. 김씨는 이 중 사채를 갚는 데 48억원을 쓰고, 지방행정공제의 대출금 7억4000만원을 갚는 등 채무변제에 55억4000만원을 썼다.

 김씨는 또 자신과 친척 명의의 아파트 4채와 베라크루즈 등 차량 3대를 사는 데 16억원 이상을 썼다. 검찰의 계좌추적 결과 김씨 부부의 명의로 된 통장은 물론 차명계좌에도 잔고가 거의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은 김씨의 집과 사무실 등 9곳을 압수수색하고 김씨가 관리한 차명계좌 11개 등 관련 계좌 160개의 자금 흐름을 분석해 숨긴 돈이 있는지를 조사 중이다.

 순천지청 이종환 형사1부장은 “담당 직원이 김씨 한 명이었던 데다 각종 서류를 부풀려 결재한 뒤 종이문서로 지급명령을 하는 등 공금 출납을 전산 시스템이 아닌 수기(手記)에 의존해 수십억원대의 공금 횡령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10월 29일자 14면)

 1992년 9월 기능직으로 임용된 김씨는 평소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는 성실한 공무원으로 평가받아 왔다는 게 동료 공무원들의 전언이다. 한 시청 공무원은 “그가 감쪽같이 공금을 횡령해 왔다는 소식에 동료 직원들은 충격에 사로잡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출퇴근 때는 고급 승용차 대신 2003년식 아반떼를 타고 다녔다. 김씨의 동료 직원은 “볼링 게임을 가끔 할 정도였을 뿐 평소 생활은 대체로 검소한 편이었는데 횡령을 숨기기 위한 가식이었다는 생각을 하니 배신감이 든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날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국고손실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여수=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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