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업계 삼킨 일본 금융, 저축은행 시장 잇단 노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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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일본계 금융이 한국 저축은행 시장에 잇따라 진출하고 있다. 사진은 19일 영업을 시작한 친애저축은행의 서울 서초동 본점 영업장. 5월 퇴출된 미래저축은행을 일본 신용카드사 KC카드가 인수해 새로 출범했다. [신인섭 기자]

친애저축은행 직원들은 요즘 매일같이 화상회의 시스템으로 업무 교육을 받는다. 이곳은 5월 퇴출된 미래저축은행을 일본 신용카드사 KC카드가 인수해 19일 문을 연 저축은행. 경영진은 인수 직후부터 ‘일본식 경영’을 직원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이 저축은행 관계자는 “대출 심사는 물론 저축은행의 모든 업무에 대해 매뉴얼을 만들고, 특히 준법·윤리 교육을 철저히 받고 있다”며 “준법 감시인을 임원급으로 격상시키고 준법 감시 담당 직원을 20여 명 확보해 15개 영업점 전체에 파견했다”고 설명했다. 이 회사는 곧 연 10%대 후반~20%대 중반 수준의 금리로 신용대출 상품을 내놓을 계획이다. 국내 저축은행의 신용대출 금리는 대부업체와 비슷한 연 30%대 중후반이 보통이다. 회사 측은 “일본 측 경영진이 대출 심사나 부실채권 관리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20%대 신용대출로도 충분히 수익을 낼 수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낮은 조달금리와 대출 노하우를 앞세워 대부업계를 점령했던 일본계 금융이 이번엔 저축은행 시장을 노크하고 있다. 한때 업계 2위였던 미래저축은행이 일본계 금융에 인수된 데 이어 현재 업계 1위인 현대스위스저축은행도 일본계 금융에 경영권이 넘어갈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앤캐시’로 유명한 A&P파이낸셜대부도 진지하게 저축은행 매입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업 시장에서 일본계 금융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2002년 대부업 합법화 이후 물밀듯 한국에 진출한 일본계 대부업체는 2006년 한때 대부업계 1~10위를 휩쓸 정도였다. 비결은 낮은 조달금리와 대출 노하우.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일본은 한국보다 20년 먼저 대부업이 합법화돼 그동안 대출 심사와 추심 노하우가 충분히 쌓여 있었던 것 같다”며 “10년 이상 지속된 초저금리 때문에 자금 조달 비용도 국내 대부업체보다 월등히 낮다”고 말했다.

 잇따른 일본계 금융의 진출 소식에 저축은행 업계가 긴장하는 이유다. 대출 심사와 추심 노하우가 발달한 일본계 회사가 저축은행을 통해 예금까지 받는다면 대부업 시장처럼 급속히 세를 확장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다. 노진호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대출 심사를 할 때 담보 가치나 신용등급 같은 정량적 평가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 업체와 달리 일본 업체들은 오랜 데이터 축적을 통해 쌓은 정성적 평가가 위력을 발하고 있다고 들었다”며 “이런 경쟁력을 앞세워 신용대출 금리를 낮춘다면 대부업 시장에서처럼 당분간 국내 업체들이 밀릴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이런 경쟁이 소비자에겐 득으로 돌아갈 것이란 기대도 나온다. 대부업체·저축은행 가릴 것 없이 연 30%대 금리 일색인 신용대출 시장에 변화가 올 것이란 낙관론이다.

조성목 금융감독원 저축은행검사1국장은 “일본계 대부업체들이 저축은행을 인수해 조달금리를 연 5% 안팎으로 낮추면 신용대출 역시 연 20% 안팎에서 공급할 것으로 본다”며 “은행과 대부업 사이에 벌어졌던 금리 간극을 메워주는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 국장은 “2002년 대부업 합법화 당시 국내 업체가 준비할 새도 없이 일본계 업체가 들이닥쳤을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며 “건전한 경쟁이 일어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권대영 금융위원회 중소금융과장은 “일본 소비자 금융이 한국보다 확실히 노하우가 축적된 건 사실”이라며 “국내 대부업체들이 일본계 업체의 영업 노하우를 빠르게 배우고 있듯 저축은행 업계도 이번 기회를 통해 대출 심사 능력 등을 향상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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