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피치] 가미카제가 즐긴 야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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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머니,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

"그래, 마쓰야마. 이제 너도 이곳 생활을 끝낼 때가 된거냐. "

"이제 제가 가지고 있는 것들은 내일이면 필요가 없습니다. 다른 것들은 잘 모르겠지만 제 지갑을 맡아주시겠습니까. "

그는 천천히 마치 자신의 동작 하나하나를 이승에 남기려는 듯 엄숙하게 지갑을 열어보였다. 그 안에는 합숙 동안 모아둔 얼마 안되는 돈과 가족 사진, 그리고 고향의 향수가 한가득 담겨 있었다.

1945년 여름.

일본의 남쪽 끝 가고시마.

만 스물넷의 일본군 대위 마쓰야마(한국명 탁경현)는 당시 어머니처럼 지내던 가고시마의 한 식당 주인 아주머니와 대화했다. 그는 미국 군함을 향해 몸을 던져야 하는 특공대(가미카제)였다. 가미카제의 뜻은 신풍(神風)이 아닌가. 말은 그럴듯 했지만 죽으러 가는 전야(前夜)였다. 떠나면 돌아올 수 없는 길이었다.

"마쓰야마, 너는 이곳 생활 동안 아무도 면회를 오지 않더구나. 이제 마지막 밤인데 네가 떠나온 고향의 노래를 한번 불러주련?"

마음씨 좋은 아주머니는 그에게 마지막 부탁을 했고 그는 주위를 잠시 돌아보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 리, 랑, 아리랑…. "

그를 빼고는 모두가 일본인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경건했다. 그는 일본을 위해 죽으러 가는 한국인이었다. 그는 의연했다. 노래가 퍼지자 침묵을 깨고 조용한 흐느낌이 번지기 시작했다. 모두가 울기 시작했다. 그리고 식당은 삽시간에 눈물바다가 됐다.

한달여 동안 합숙하며 미군 군함에 비행기 전체를 던져야 하는 운명을 깨달았고, 그 운명을 속절없이 받아들여야 했던 20대 초반의 젊은이들, 그들은 함께 울었다.

마쓰야마의 사연은 고(故) 서정주 시인이 한때 친일파적인 송가(頌歌)로 노래하기도 했지만 최근 '호타루' 라는 영화로 만들어졌다. '호타루' 는 일본 도에이 영화사의 창립 50주년 기념 작품으로 제작비 10억5천만엔을 투입, 일본에서 지난 5월 26일 개봉돼 선풍적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내가 죽으면 반딧불이 되어 돌아오겠다" 는 말을 남기고 미국 군함에 몸을 던진 1천30명의 가미카제 가운데 정확히 11명은 한국인이었다.

지난달 일본 가고시마의 '지란특정 평화회관' 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곳은 45년 오키나와(沖繩) 인근까지 접근한 미국 군함에 대항한 일본 가미카제의 넋을 기리기 위한 기념관이었다. 기념관에는 이십대 초반에 생을 마감한 '아쉬운 젊은이들의 초상' 이 잘 전시돼 있었다.

그 가운데 눈길을 사로잡았던 나무방망이 하나를 잊을 수 없다. 이제는 60여년이 지난 야구 배트였다. '자키 배트' 라는 영문자 인쇄가 선명한 야구방망이는 가미카제들이 훈련 틈틈이 여가시간에 애용했던 도구였다. 그들은 야구를 통해 그 시절의 젊음을 불사르며 죽음을 준비했다. 왜 하필 야구인가. 그 속에서 야구가 지닌 '희생정신' 의 특성을 순간 느꼈다면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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