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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경제 리포트] 군대가려 아우성 치는 날을 꿈꾸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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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최근 아들을 군에 보낸 사람을 만났다. 훈련소에서의 안쓰러웠던 부모 심정을 토로하는 것이었다. 절로 우리 애들 입대 때 생각이 났다.

나는 아들만 둘이다. 둘 다 복무를 마치고 지금은 복학했다. 그래서 주위에서 "이젠 대통령 출마해도 되네요"하는 싱거운 소리를 듣는다.

겁나게 질러대는 조교들의 구령이 도살장에 소떼 끌고가듯 연병장의 젊은이들을 줄지어 몰고 가는 걸 지켜 본 부모라면 그런 농담이 전혀 우습게 들리지 않는다.

점점 멀어져 가는 애들의 행진 구령이 들리지 않을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못했던 기억 때문이다. 그 기억은 누구를 향한 것인지 모를 분노와 더불어 아직도 생생하다.

왜 이렇게 애들을 군대 보내기 싫을까. 왜 애들이 "주변에 군대 가는 애가 별로 없어요"라는 소리를 할 때마다 "임마, 남자는 다 군대 가야 사람 되는거야"하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없어지지 않을까. 군에 간 애들이 편지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정말 편하게 지냅니다"고 써 보내도 마음이 편치 않은 건 무슨 이유일까.

혹시 군 복무가 의미하는 '사회와의 2년2개월 단절'이 두려워서가 아닐까.

매일매일을 몸과 마음을 갈고 닦아도 살아남기 힘든 게 오늘과 내일의 지식경쟁.국제경쟁 사회다. 어제보다는 더 정보화된 젊은이, 오늘보다는 더 국제화된 경쟁인이 되려는 노력, 그 흐름과 기회로부터 짧지 않은 기간동안 절연되어 지내야 하는 것. 그게 우리 젊은이들이 그토록 군복무를 꺼리는 이유는 아닐까.

21세기 글로벌 경쟁이 요구하는 지적 경쟁력의 수준은 계속 또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그 결과 '군에서 썩는'것이 단순히 앞으로 나아가는 걸 멈추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자칫 21세기 경쟁에 참여할 수 없을 정도로 영원히 뒤지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 그걸 우리가 두려워 하는 것이다.

국방의 의무도 좋고 '대한남아'로 장성하는 것도 좋다. 그러나 적어도 '무기'현대화를 겨냥한 17조4천억 국방예산의 조금, 2년2개월의 '편해진 군생활'의 일부라도 떼어내 '군인'지식화에 쓴다면 그 두려움이 조금이나마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컴퓨터든 인터넷이든 최소한의 정보와 지식을 갖추고 영어든 이웃나라 말이든 외국어를 습득해 늠름하게 제대하는 애들을 보고 싶다.

우리 군이 60만의 '몸뚱이'만 모아놓은 곳이 아니고 내일의 국가경쟁을 이끌고 갈 '젊은 지적자원의 보고(寶庫)'가 되는 날, 그래서 '군에 가지 않아도 된다'고 하면 '왜 나를 빼느냐'고 항의하는 날을 꿈꿔 본다.

김정수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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