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한국경제의 새해 숙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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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새해 한국 경제의 희망의 햇살은 짙은 먹구름 뒤에 감춰 있는 것 같다.

위기적 양상이 압도적이란 말이다. 밖으로 이라크 사태.북핵(北核)문제.테러 재발 등의 '지정학적 리스크'와 함께 미국의 신경제 불황, 일본의 10년 디플레, 독일의 장기 침체 등 세계 3대 경제대국의 짙은 먹구름이 있는가 하면 '메이드 인 차이나'의 위협이 한국 산업의 공동화와 디플레를 재촉하고 있다.

안으로는 정부.가계.지방자치단체.기업의 부채가 한국의 잠재성장률을 1%포인트 가량 떨어뜨리면서 '총수요관리정책'을 무력화시키고 있다. 가계 대출을 줄이자니 신용불량자 양산과 부동산 가격 폭락으로 은행 부실화를 초래하는 부메랑 위기가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산업경쟁력 위기다. 지금까지 한국 산업의 경쟁력의 가장 큰 몫을 차지하던 환율과 저임금요인은 점차 사라지는데 생산성 향상은 지연되고 있다. 교역조건과 세계 시장에서의 시장점유율 역시 빠른 속도로 떨어지고 있다.

오늘날 산업경쟁력의 핵심은 기술경쟁력이다. 최근 정부에서 한국의 산업기술경쟁력이 중국보다 5년 이상 앞섰다고 발표했지만 이는 너무 안일한 조사다. 일본이 몇년 전 중국과의 기술 격차를 4~5년 정도로 잡았었다.

지금 기준으로 본다면 2~3년 정도다. 요즘 일본 경제를 대수롭지 않게 보는 경향이 있으나 일본 경제는 '당장 활력은 없으나 실력은 대단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더구나 일본은 불황 속에서도 연구개발(R&D) 투자에는 엄청난 열의를 쏟으며 '한.중 타도'를 벼르고 있어 불황이 끝나면 기술강국의 위력이 여지없이 발휘될 전망이다.

중국은 '세계의 공장'일 뿐만 아니라 세계 5백대 기업의 'R&D 센터'로 변신하고 있다. 한국의 기술은 원천기술 없는 생산기술이기 때문에 중국이 2~3년 정도 뒤 한국을 따라잡을 것으로 봐야 한다.

세계 경제는 1998~2000년의 정보기술(IT) 붐을 둘러싼 '비합리적 들뜸'이 그후 '비합리적 비관'으로 바뀌면서 거품이 꺼지고 기업 도산의 골짜기를 통과하고 있는 중이다.

머지않아, 아마도 2004~2005년 경에 신산업의 황금 언덕에 오를 전망이다. 자동차 산업 초기에 5천7백여개의 자동차 회사가 나타났다가 거품이 꺼지면서 13개만 남았고, 이들이 자동차 황금시대의 주인공였던 것과 같은 상황이 될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호황이 왔을 때는 이미 늦다는 사실이다. '죽음의 계곡'에서 필사적으로 기술 혁신을 해야만 그 기술 혁신이 '내재적으로' 황금 언덕을 오르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불황이 바로 기술 혁신의 기회다. 불황을 돌파할 신기술 개발에 모든 역량을 모아야 한다. 지금 당장 하지 않으면 안된다.

노무현 정권 5년, 특히 앞에서 여러 모로 본 바와 같이 2005년까지가 결정적 시기다. 시간이 없다. 미국.중국.일본의 신기술 우위 시스템이 구축되고 나면 한국의 '라틴 아메리카화(化)'를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지금까지의 재무 금융 논리의 구조조정을 산업기술 경쟁력 위주의 구조조정으로 틀을 바꿔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경제부처의 조직 개편을 서둘러야 한다.

국가 혁신 시스템을 지방기술혁신시스템과 글로벌 이노베이션 시스템과 연계시키면서 여기에 교육과 금융과 무역시스템을 접합시키는 '2005 선점 전략'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김영호 前산업부 장관.경북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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