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오바마 백악관에 부엌정원 가꿔 … 뉴욕도 600여 텃밭에 2만여 명 참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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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2009년 3월 미국의 퍼스트레이디 미셸 오바마는 직접 삽을 들고 백악관 남쪽 잔디밭을 파헤쳤다. ‘키친 가든(부엌정원)’이란 이름으로 102㎡(약 31평) 규모의 텃밭을 가꾸기 위해서였다. 백악관 주변에 사는 20여 명의 초등학생도 농기구를 들고 일꾼으로 참여했다. 미셸은 학생들과 함께 잔디를 제거하고 흙을 보충한 뒤 게 껍데기 가루와 석회 등을 버무린 퇴비를 뿌려 땅심을 되살렸다. 4년째 완전 유기농으로 운영되는 백악관 텃밭에선 씨앗과 농기구 값을 포함해 연간 200달러(약 22만원)의 예산으로 상추·토마토·시금치·양파 등 각종 채소와 샐러드용 허브를 길러낸다. 한쪽 구석에는 작은 벌통을 마련해 놓고 꿀을 생산하며 식물의 열매 맺이도 돕는다. 해충은 살충제를 뿌리는 대신 무당벌레 같은 자연 천적을 이용해 막고 있다. 텃밭에서 나온 채소는 백악관 주방으로 보내 대통령 가족의 밥상에 올리거나 백악관 파티에 참석한 손님들에게 대접하고 일부는 워싱턴DC의 노숙자 쉼터에도 기부한다.

 최근 미국에선 미셸처럼 텃밭을 가꾸거나 소규모로 농사를 짓는 도시 농부들이 늘어나고 있다. GYO(Grow Your Own·채소 직접 기르기)나 로커버(Locavore·가까운 곳에서 생산된 먹거리만 골라먹는 사람)라는 단어가 유행하는 배경이다. 뉴욕에선 1970년대 ‘그린 게릴라’라는 단체가 시내 곳곳의 자투리땅에 텃밭을 만드는 ‘그린 섬(Green Thumb)’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초기엔 뉴욕시 소유의 노는 땅을 무단 점유하기도 했으나 시민운동으로 확대되면서 뉴욕시도 적극 지원으로 정책 방향을 돌렸다. 현재는 600여 곳의 텃밭에 2만여 명이 참여하며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도시농업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영국의 대도시에선 임대형 텃밭인 ‘얼로트먼트 가든(할당정원)’이 활성화돼 있다. 지방정부가 소유한 땅을 시민들에게 싼 가격으로 빌려줘 텃밭으로 가꾸게 하는 것이다. 영국 전역에 30여 만 곳이 있는데 임대기간에 제한이 없기 때문에 한 번 빌리면 사실상 반영구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빈 곳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사람은 전국적으로 10만 명에 달한다. 런던의 경우 10년 이상 기다려야 겨우 차례가 돌아온다고 한다.

 독일에는 ‘작은 정원’이란 뜻의 ‘클라인가르텐’이 대표적이다. 휴식공간이 딸려 있는 대형 주말농장으로 독일 전역 100만 곳에 달한다. 19세기 의사이자 교육자인 슈레버가 환자들에게 햇볕이 잘 들고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는 곳에서 작은 정원을 가꾸는 치료법을 제안한 데서 유래됐다. 클라인가르텐에선 한 가족이 200~400㎡(약 60~120평)의 땅을 빌려 각종 채소와 과일을 재배하고 여러 가지 꽃과 나무를 심어 가족정원을 꾸밀 수 있다.

 일본은 2000년대 들어 농지 관련법이 개정된 뒤 ‘시민농원’이 인기를 끌고 있다. ‘경자유전’의 원칙을 고집하지 않고 법적으로 농지의 소유와 이용을 분리한 게 계기가 됐다. 영국의 얼로트먼트 가든이나 독일의 클라인가르텐은 대개 지방정부가 소유한 땅에서 이용자 단체가 운영하지만 일본의 시민농원은 특정 농가의 사유지가 대부분이고 운영 주체도 다양한 것이 특징이다. 시민농원의 계약기간은 보통 1년이고 관련 법에 의해 최장 5년으로 제한된다. 현재 일본 전역에 3000여 곳의 시민농원이 있다. 시민농원 중 가장 대중적인 ‘농업체험농원’은 농가에서 실시하는 교육을 받고 정해주는 작물을 심어야 한다는 점에서 이용자가 자유롭게 농사를 짓는 한국의 주말농장과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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