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리의 진실' 10일 국내 개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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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말 서울 명보극장에서 열린 '찰리의 진실' 시사회는 십여명의 스타가 자리를 함께하는 보기 드문 풍경을 연출했다.

안성기.장동건.한석규.설경구.이미연.김정은.송윤아.김선아.김승우.차태현.신현준 등 연말의 시상식장이 아니면 여간해선 한자리에 모이기도, 모으기도 쉽지 않은 배우들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찰리의 진실'로 한국 배우로서는 사실상 최초로 할리우드에 진출한 박중훈을 축하해주기 위해서였다.

이미 알려진 대로 박중훈은 '인정사정 볼 것 없다'(감독 이명세)에 반한 조너선 드미 감독의 제안을 받아 이 영화에 출연했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박중훈의 비중은 '할리우드 진출'이라는 수사(修辭)에 크게 부끄럽지 않다.

그가 연기하는 전직 특수부대원 이일상은 남녀 주연을 맡은 마크 월버그.탠디 뉴튼 다음 가는 네 명의 조연 중 하나다. 또 극의 흐름을 반전시키는 단서를 발견한다.

대사량이 많지 않은 덕도 있겠지만 그의 영어 구사는 크게 어색하지 않다. 오히려 영어를 완벽하게 하려다 보니 연기에 다소 힘이 들어가지 않았겠나 싶다. 이일상은 말수는 적지만 전반적으로 느껴지는 코믹한 느낌이 '인정사정…'의 우형사와 흡사하다.

'찰리의 진실'은 스탠리 도넌 감독의 1963년작 '샤레이드'를 리메이크한 로맨틱 스릴러다. 오드리 헵번과 케리 그랜트가 주연한 '샤레이드'는 인터넷 영화 평점 사이트인 IMDb의 역대 영화 순위에서도 1백68위를 차지할 정도로 유명한 작품. 국내에도 TV로 몇 차례 방영돼 올드팬이 많다.

영화는 하루 아침에 남편을 잃은 여인이 남편의 숨겨진 과거를 알게 되면서 휘말리는 '진실게임'을 그리고 있다. 가냘픈 여인은 목숨을 위협받기도 하고 흑기사처럼 나타난 남자의 보호를 받기도 하지만 문제는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데 있다.

조너선 드미의 리메이크작은 두 전설적 배우의 후광에 상당 부분 의존했던 원작보다 배우들의 카리스마는 덜할지 모르지만, 자유분방하고 경쾌한 감각이 돋보인다.

최고 번화가인 샹젤리제는 물론 뒷골목 벼룩시장까지 샅샅이 누비는 카메라 덕분에 맛보는 파리의 풍광이 일품이다. 이국풍의 음악도 이 영화가 1960년대의 '우아한' 고전에서 2000년대의 '젊은' 스타일로 바뀌는 데 한몫한다.

부유한 미술품 중개상 찰리(스티븐 딜런)와 결혼해 파리에 사는 레지나(탠디 뉴튼)는 늘 집을 비우는 남편과 이혼을 결심한다. 기분전환 겸 카리브 여행을 다녀온 그녀는 집이 온통 털린 데다 남편이 살해됐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또 미 대사관 직원인 바솔로뮤(팀 로빈스)는 찰리가 대사관의 특수요원이었다며 그를 비롯한 대원 네 명의 사진을 보여준다.

찰리는 이들과 함께 투입됐던 한 인질 구출작전에서 6백만달러어치의 다이아몬드를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었다.

'찰리의 진실'은 '정통' 할리우드 영화는 분명 아니다. 예기치 않은 장면이 꼬리를 물고 이어질 때 관객들은 숨죽이고 긴장하는 대신 웃음을 터뜨린다. 드미가 밝힌 대로 프랑스 누벨 바그풍이 강하게 드러난다.

이는 이 영화를 '청출어람'까지는 아니지만 색다른 맛을 인정받을 만한 변종으로 평가받게 하는 장점인 동시에, 대중성을 떨어뜨리는 단점이기도 하다. 아니나 다를까, 이 영화는 제작비 5천만달러를 들였지만 미국에서 5백만달러밖에 회수하지 못했다.

◇NOTE:영화 팬이라면 누벨 바그와 관련된 깜짝 출연이 볼거리다. 프랑수아 트뤼포의 '피아니스트를 쏴라'에 출연한 가수 겸 배우인 샤를 아즈나부르, 한때 장 뤼크 고다르의 아내였으며 '비브르사비'등 고다르 작품에 단골 출연한 안나 카리나, 누벨 바그 운동의 유일한 여성 감독이었던 아네스 바르다 등이 얼굴을 내민다. 10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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