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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 인문학을 사로잡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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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사회 곳곳에 ‘힐링(Healing) 열풍’이 분다.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김난도 서울대 교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의 혜민 스님 등이 일으킨 힐링, 즉 치유의 바람은 새로운 흐름의 전주곡이다. 힐링이 인문학 연구 전반으로 확산된다.

 한국연구재단 주최 ‘2012년 인문주간’의 주제가 ‘치유의 인문학’이다. 이에 앞서 지난 7월 강원대에서 ‘인문 치료’를 주제로 국제학술대회가 열렸다. 이 대회를 주관한 단체는 강원대가 2007년 설립한 인문치료사업단이다. 인문치료에 관심을 가진 학자들이 모여 2009년 ‘철학상담치료학회’도 창립했다.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에는 2009년 철학상담 전공이 생겼고, 올 들어 명지대 사회교육대학원에 철학상담치료학과가, 경북대 학부에 인문치료학과가 개설됐다. 또 푸른역사아카데미는 19일부터 ‘역사와 치유’ 주제의 릴레이 강좌를 진행 중이다.

 ‘치유의 인문학’ ‘인문 치료’ ‘철학상담치료’ 등 이름은 조금씩 달라도 지향하는 바는 같다. 인간성 상실과 내면의 상처로 인한 ‘마음의 병’ 혹은 ‘문화적 질병’의 치유가 목표다. 인간 연구가 본령인 인문학의 사회적 역할을 넓히는 일이다.

 전국 사찰의 템플스테이, 예술인들이 펼치는 각종 ‘예술 치료’, 대학과 지자체가 일반인 상대로 여는 인문학 강좌에 시민이 몰리는 현상도 이와 무관치 않다.

 허라금(이화여대·여성학) 교수는 “실용적 가치가 적다는 이유로 후순위로 밀렸던 인문 정신이 삶의 위기를 계기로 하여 삶의 가치를 회복해 줄 근원적 자원으로 활용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인문학과 힐링의 만남=세계적으로 인문학과 치유의 만남은 30년 전으로 올라간다. 독일의 철학자 게르트 아헨바흐가 1982년 철학상담소를 설립, 철학적 대화를 임상 치료에 도입한 것을 효시로 꼽는다. 1997년 IMF 경제위기 이후 캐나다 철학자 얼 쇼리스가 노숙자 대상의 인문학 강좌 ‘클레멘트 코스’를 연 것도 유명하다. 이를 본 따 한국에서도 빈민·노숙자를 위한 ‘희망의 인문학’이 선보이기도 했다.

 1999년 설립된 미국철학실천협회는 철학상담사 자격증 제도까지 운영한다. 올 7월 강원대 국제학술대회에서 기조강연을 한 미국의 철학상담사 루 매리노프는 이 시대를 “인문학적 치료를 요청하는 시대”로 정의하며 “문화적 요인에 의한 질병은 인문학의 영역에서 해결돼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미국의 철학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한 국내 학자는 이영의(강원대 인문치료사업단)·이진남(숙명여대 교양교육원) 교수 두 명이다.

 이진남 교수는 “철학상담사는 상담 받는 이의 인간관, 세계관에 내재된 모순을 함께 토론하면서 그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돕는다”고 밝혔다.

 ◆전국 곳곳 힐링 이벤트=2012년 인문주간은 29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 뜨락에서 개막한다. 11월 4일까지 치유와 인문학 주제의 공연·콘서트 등 이벤트가 전국 곳곳에서 펼쳐진다(한국연구재단 홈페이지 참조).

 이 행사의 일환으로 제2회 세계인문학포럼도 치유의 인문학을 주제로 다음 달 1~3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려, 콘라드 야라우쉬 미 노스캐롤라이나대 교수, 미셸 마페졸리 프랑스 파리5대학 교수의 기조강연을 포함해 세계 20여 개국 33명의 학자와 국내 학자 28명이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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