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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바둑이야기 - ‘반상의 야전사령관’ 서봉수 ③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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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박치문 바둑전문기자

서봉수 9단과 오타케 히데오 9단의 제2회 응씨배 결승전은 ‘실전적 한국류’와 ‘일본 미학’의 정면 대결이었다. 세련되고 우아한 일본 미학은 아름다움과 추함이 수를 선택하는 기준이 된다. 잡초적 생명력을 지닌 서봉수식 한국류는 실전적 효능을 따질 뿐이다. 승부는 극적이었고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지만 이 대결 이후 일본 미학은 석양을 맞고 한국류가 대세를 장악하게 된다.

박치문 바둑전문기자

경외하던 조치훈 꺾고 결승 올라

잡초의 생명력 하나로 응씨배 결승전에 오른 토종 바둑 서봉수(왼쪽)는 ‘일본미학’의 수호자요, 우아한 귀족 바둑의 상징이라 할 오타케 히데오와 결승전을 치른다. 이 대결은 일본 미학의 퇴조와 함께 ‘실전 한국류’가 세계를 휩쓸게 되는 분기점이 된다. 1993년 3월 제주도. [사진 한국기원]

서봉수는 생애의 라이벌인 조훈현 9단이 응씨배에서 우승해 40만 달러의 상금을 차지하고 광화문까지 카 퍼레이드를 벌였을 때 너무나 부러워 견딜 수 없었다. 응씨배가 아니라도 좋았다. ‘세계 1위’ 자리에 오르고 싶었다. 그게 소원이었다. 하지만 서봉수는 몇 년 동안 후지쓰배 4강이 최고 성적이었다. 그러나 고진감래라던가. 1992년 2회 응씨배에서 기회가 찾아왔다. 중국과 대만의 관계가 급랭하면서 중국이 응씨배를 보이콧했다. 적수가 줄어들었다. 대진운도 좋았다. 조훈현은 일본의 노장 아와지에게 졌고, 요다와 린하이펑도 탈락했다. 그리고 서봉수가 가장 두려워 하던 ‘이창호’라는 강적이 ‘여전사’ 루이나이웨이 9단에게 져 탈락했다(※천안문 사건 이후 중국을 떠난 장주주 9단과 연인 루이나이웨이는 일본과 미국에서 떨어져 살다가 응씨배에 초청받는다. 두 사람은 2회 응씨배가 열린 도쿄에서 만나 결혼식을 올린다. 마치 출정식을 연상케 하는 비장한 결혼식이었고, 그 기세에 눌린 듯 이창호는 루이에게 패배한다. 당시 이창호는 국내에서 스승 조훈현을 제치고 1인자로 발돋음한 상태였다).

 그러나 ‘우주류’의 다케미야 마사키를 격파하고 천신만고 4강까지 오른 서봉수 앞엔 또 한 명의 천적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조치훈 9단이었다. 조치훈은 조훈현이나 서봉수보다 세 살 연하지만 가장 먼저 스타덤에 오른 기사다. 그는 1980년에 일본 명인의 자리에 올랐고, 그해 금의환향해 정부로부터 문화훈장을 받았다. 조훈현과 두 번 기념대국을 가져 두 번 다 이겼다. 바로 그 무렵 서봉수는 조치훈을 찾아갔다. 평소 바둑에 대해 궁금한 게 많았던 서봉수는 조치훈이 그 의문을 해결해 줄 적임자라 생각했다. 조치훈을 자기보다 월등한 상수라고 여겼기에 선생님에게 묻듯 부끄러움 없이 물었다. 이 일로 두 사람은 가까워진다. 외국에서 외롭게 자란 조치훈과 단순 솔직한 서봉수는 통하는 데가 있었다. 하지만 승부사는 어떤 상대가 자기보다 상수라고 생각하는 순간 심리적으로 고양이와 쥐의 관계가 된다. 결코 이길 수 없는 상대가 된다. 1992년 11월, 제2회 응씨배 준결승전이 서봉수 대 조치훈, 루이나이웨이 대 오타케 히데오의 대결로 대만의 타이베이에서 열렸다.

 준결승전은 3번기. 서봉수는 첫 판을 힘 없이 내줬다. 심리적으로 고양이와 쥐의 관계였기에 도대체 판이 짜 지지 않았다. 안 되는구나 싶었고 그래서 2국은 오히려 편했다. 마음이 저절로 비워졌고 끝나 보니 1집을 이기고 있었다. 그 바둑의 끝내기 때 서봉수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조치훈이 괴로워하며 탄식하는데 실로 굉장했다. 서봉수 본인의 표현을 빌리면 “맹수가 울부짖는 것 같은 애통함”이었다.

조치훈에 대한 두려움과 세계 1위에 대한 열망이 충돌하며 밤새 복통을 앓았던 서봉수(오른쪽)는 조치훈과의 준결승전에서 생애에 남을 명국을 남긴다. 1992년 11월 타이베이. [사진 한국기원]

 준결승전 최종전을 앞둔 전날 밤, 서봉수는 창자가 끊어질 듯 아파 견딜 수 없었다. 2국은 요행으로 이겼으나 막상 1대1이 되자 두려움이 몰려왔다. 그의 내면에선 ‘세계 1위’에 대한 절실한 욕망과 조치훈에 대한 두려움이 격렬하게 충돌했다. 그게 배앓이로 나타났다. 밤새 앓고 머릿속이 텅 빈 채 대국장에 들어섰다. 그리고 이날 서봉수는 자신의 바둑 인생에 남을 만한 명국을 만들어낸다. 누구보다 전투적인 조치훈과 시종일관 난타전을 전개하며 백으로 5집을 이겨낸 것이다. 이게 승부사 서봉수의 매력이다. 깨지고 피를 흘리면서도 기어서라도 벽을 넘어가는 그 특이한 생명력이야말로 서봉수의 매력이다.

 다른 준결승전에서 오타케 히데오 9단이 루이나이웨이를 2대1로 꺾었다. 비록 졌지만 ‘여자기사 루이’는 ‘세계 4강’에 올랐고 그 기록은 아직까지 깨지지 않고 있다. 오타케가 결승에 오르자 서봉수의 입가엔 회심의 미소가 감돌았다. 서봉수는 실전적인 힘을 지닌 사람만을 인정한다. 그 실전적인 힘이란 것도 지극히 자의적이다. 해서 이창호는 하늘같이 높이 보고 조치훈도 높이 본다. 녜웨이핑이나 린하이펑도 인정한다. 하지만 ‘우주류’의 다케미야 9단이나 ‘미학’의 오타케는 조금 우습게 본다. 우주류는 공배가 될 수도 있는 중앙을 에워싸는 것이고 미학은 모양의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이 모든 게 서봉수가 생각하는 실전적 치열함과는 거리가 멀다. 헛된 화장이나 사치스러움마저 느껴진다. 그러니 남들이 아무리 찬사를 보내도 서봉수는 생리적으로 높이 봐줄 수가 없는 것이다.

 사실 ‘미학’은 표현이 좀 이상하지만 바둑이 추구하는 ‘효율’과 맞닿아 있는 매우 중요한 테마다. 바둑돌이 능률적으로 배치되면 그 모습은 아름답다. 비능률적인 돌은 추하다. 일본은 수백 년 동안 이런 미추의 개념 아래 바둑을 발전시켜 왔고 현대에 와서 ‘미학’이란 이름을 얻게 됐다. 미학은 바로 오타케 히데오 9단의 신념이다. 오타케는 일본 최고의 명문 도장인 기타니 도장 출신이고, 또 이곳의 수석 사범을 지냈다. 조치훈-다케미야 등은 다 그에게서 배웠다. 오타케는 차라리 대마를 죽일지언정 추한 수는 두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기에 이윽고 ‘미학의 수호자’로 떠올랐다.

 하지만 서봉수 바둑은 어떤가. 그는 오직 실전을 중시하며 실전적인 수라면 모양의 미추를 따지지 않는다. 필요하다면 진흙탕 속에도 뒹굴고 패망선도 얼마든지 기어다니고 빈삼각도 둔다. 그래서 2회 응씨배 결승 5번기는 서봉수가 상징하는 ‘잡초류’ 또는 ‘실전적 한국류’와 오타케가 상징하는 ‘일본 미학’의 정면 대결이 된 것이다.

1시간이나 남았는데 ‘속기 ’미스터리

결승전은 이듬해, 그러니까 1993년 3월 제주도 서귀포 하얏트호텔에서 시작됐다. 1, 2국은 한국에서 두고 3, 4, 5국은 싱가포르에서 둔다는 스케줄이었다. 서봉수는 고통스러웠던 준결승전에 비하면 한결 여유로웠다. 그러나 첫 판은 오타케의 완승이었다. 서봉수는 ‘미학’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미학이 우습지 않다는 것을 절감했다. 일본 바둑은 빠르게 석양을 맞게 되지만 이때만 해도 아직 건재했다. 2국은 그러나 서봉수의 승리. 이전투구의 백병전에서 거친 잡초류의 생명력이 작동했다.

 2국이 끝나고 싱가포르의 3국까지는 아직 두 달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서봉수는 오타케의 기보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오늘날 일본 미학은 바둑의 주류에서 사라지고 전투적인 ‘한국류’가 대세로 떠올랐다. 그러나 미학은 바둑의 기본이며 여전히 유효하다. 자칫 탐미적으로 흘러 파괴력을 잃는 약점이 있지만 최고의 감각은 미학이란 가마에서 구워진다.

 3국에서 서봉수는 흑을 들고 191수 만에 불계승했다. 상대를 알자 승부도 쉬워진 감이 있었다. 서봉수는 그러나 4국에서 그만 정신을 놓아버렸다. 우승이 가까워지자 서봉수의 내면은 복잡해졌다. ‘헝그리 복서’에게 눈앞에 다가온 40만 달러가 우선 너무 고혹적이었다. 서봉수는 매우 빠른 속기로 일관했는데 그것도 미스터리였다. 평소 서봉수의 기질로 볼 때 이 한 판에 온몸의 에너지를 마지막 1그램(g)까지 쏟아부어야 마땅한데 서봉수는 아무리 난해한 장면에서도 손이 척척 나갔다. 바둑이 끝났을 때 서봉수의 시계는 무려 1시간이나 남아 있었다. 5시간짜리 바둑도 초읽기에 몰리며 최선을 다하던 서봉수인데 이 중요한 바둑에서 왜 그토록 빨리 둔 것일까. 소원이던 세계 챔프가 눈앞에 다가오자 갑자기 두뇌가 작동을 멈추고 멍해져 버렸다. 191수, 흑 불계패. 지금까지의 바둑에 비하면 바둑 내용도 참으로 형편없었다.

 얼굴이 빨개져서 나온 서봉수에게 그 이상한 ‘속기’에 대해 물어보니 “초읽기에 몰릴까 봐 빨리 뒀다”는 답이 돌아왔다. 신기하다. 프로기사가 초읽기를 두려워하다니! 설령 그렇다 해도 1시간이나 남길 필요는 없지 않은가. 우승이 다가오자 정신이 공황상태로 접어들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저 질기고 질긴 서봉수가 정신을 놓다니. 얼마나 우승을 소원했으면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인간의 두뇌는 참으로 오묘하다.

 서봉수의 혼란은 2대2가 된 이후 더욱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서봉수보다 10년 연상인 오타케는 키가 자그맣지만 리더의 기질이 있는 사람(그는 훗날 일본기원 이사장을 맡기도 한다). 서봉수는 문득 오타케가 5국에서 ‘고목’을 둘 것 같다며 걱정했다. 바둑은 네 귀에서 시작되는데 주로 화점이나 소목을 많이 둔다. 고목이나 외목도 가끔 둔다. 그건 코피를 마시느냐, 홍차를 마시느냐와 같은 차이일 뿐이다. 고목은 좌표상의 위치가 ‘5의四(사)’로 너무 높아 프로들은 거의 쓰지 않는다. 암수가 많아 아마추어들이 하수와의 대국에서 종종 쓴다. 한데 서봉수 같은 당대의 고수가 고목 따위를 두려워하다니!

▶바둑이야기(서봉수④) - 12월 3일자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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