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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제작팀처럼 지식 네트워크가 해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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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54년 역사의 건축설계회사 PDI글로벌그룹 허승회 회장. [사진 재외동포재단]

“20세기가 제조업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지식공유의 시대입니다. 각 회원사가 가진 정보, 지식, 인력을 공유해 시너지를 내고 윈윈(win-win)하는 지식공유 네트워크가 해답이 될 수 있습니다.”

 건축설계회사 PDI글로벌그룹 허승회(68) 회장은 2006년 새로운 사업 모델을 선보인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미국 미네소타주에 본사를 둔 이 회사는 건축설계·엔지니어링·인테리어·조명·건설자재 등 세계 곳곳의 건축·건설 관련 기업과 협력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회원사들이 지식과 정보를 공유해 글로벌 프로젝트를 수주하고, 역할을 분담해 이를 완수하는 방식이다.

 16~18일 열린 제11차 세계한상대회에 참석차 방한한 허 회장은 “지식공유 네트워크는 작지만 실력있는 업체들이 대형 글로벌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준다”고 말했다. 예컨대 저층 건물만 설계해 본 건축가에게 고층 의뢰가 들어오면 이를 전문으로 하는 회원사와 지식과 경험을 공유해 계약을 따낼 수 있다. 그는 “영화 제작 때 감독, 배우, 촬영, 편집, 의상 등 각 분야 최고 전문가들로 그때 그때 팀을 꾸리는 것과 같은 방식”이라며 “자체 공장도, 전속 디자이너도 없이 세계 1위가 된 나이키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말했다.

 그의 시도는 적중했다. 세계 14개국 92개사를 회원으로 둔 PDI의 네트워크는 미국·한국을 비롯 중국·두바이·콜롬비아·아제르바이잔·콩고까지 전 세계로 수주 범위를 넓혔다. 아제르바이잔 최초의 골프장과 대통령 영빈관이 포함된 복합주거단지, 콩고 주택 120만 호, 중국 충칭 신도시 복합단지 작업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계약건수는 2006년 10여 건에서 올해 50여 건으로 늘었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건축·건설 시장이 얼어붙었는데도 PDI는 혁신적 사업방식 덕에 올해 흑자를 바라본다.

 허 회장은 건축과 운명적으로 만났다. 서울대 조선·항공공학과에 지원했다가 입시 전날 식중독에 걸렸다. 후기로 한양대 건축공학과에 입학했다. 졸업 후 1971년 미네소타대 대학원에 유학했다. 은사였던 레오나도 파커 교수는 그를 자신이 세운 PDI에 입사시켰다. 그는 6년 만에 파트너로 초고속 승진했다. “일을 하나라도 더 배워 빨리 한국에 돌아가겠다는 마음”이었다고 한다. 자기 일을 끝내고 옆을 도우며 남보다 앞서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도움을 청하는 통에 ‘소방수’란 별명도 얻었다. 성실함을 눈여겨 본 파커 교수는 97년 허 회장에게 경영권을 넘겼다. 그에게 “아들보다 내 회사를 더 잘 키울 적임자”라고 했다. 파커 교수 아들도 건축가다. 현재 PDI에서 일한다. PDI는 서울 삼성동 아이파크, 한남동 더힐, 부산 컨벤션센터(벡스코) 설계참여로 한국에도 널리 알려져있다. 2006년 허 회장은 회사의 모든 지분을 사들였다.

 허 회장은 “한국 건축가를 세계적으로 키울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노키아를 보세요. 휴대전화 같은 첨단 기술은 언제든지 사라질 수 있어요. 하지만 건축은 50년, 100년 동안 한 자리에서 수많은 사람에게 기억되고 감동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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