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크루터를 계속 기용해야하는 이유

중앙일보

입력

지난 19일 밀워키 브루어스 전에서 박찬호가 거둔 2안타 완봉승은 그가 메이저리그에서 연봉 2천만달러 이상의 가치가 있는 선수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경기였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LA다저스에서 왜 채드 크루터가 마스크를 써야만 하는가를 보여주는 경기이기도 하였다.

최근 LA타임즈의 칼럼리스트 빌 플라스키의 기사 등에서도 볼 수 있듯이 지역언론이나 다저스의 야구팬들은 박찬호가 올시즌 엄청난 공격력을 모이고 있는 폴 로두카를 벤치에 앉히고 굳이 타격이 약한 채드 크루터와 배터리를 이루어야만 하는 가에 대하여 불만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사실이었다.

물론 이런 불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런 의견의 내용 중 상당부분은 팀 내에서 채드 크루터의 역할이나 활약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나오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조금만 채드 크루터와 폴 로두카 그리고 다저스의 기록 및 경기내용을 살펴보면 그런 사실을 잘 알 수가 있다.

1. 포수는 공격력이 좌우하지 않는다.

포수라는 포지션은 전통적으로 공격력보다는 수비력이 더욱 우선시 되는 포지션이다. 물론 최근 들어서는 그러한 경향이 조금씩 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래도 큰 명제는 변함이 없다.

다저스에 있어서 메이저리그 14년 경력의 채드 크루터와 고작 올시즌 풀타임 메이저리거 첫해를 맞이하는 로두카를 비교하였을 때 분명히 수비면에서 크루터가 앞서는 것은 분명하다.

그것은 기록에서도 잘 나타난다. 포수로서 43경기에 출전한 로두카가 캐처 방어율 4.17, 도루저지율 34.4%인데 반해 크루터는 올시즌 49경기에서 방어율 3.87, 도루저지율이 41.2%에 이른다. 물론 크루터가 박찬호의 전담으로 배터리를 이루었기 때문에 방어율이 낮은 것도 없지 않겠지만 다저스의 팀 방어율이 4.20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크루터의 활약은 절대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박찬호가 메이저리그에서 본격적으로 활약하기 시작한 이래 다저스에서는 공격을 잘하는 포수들은 있었지만 포수다운 포수는 98년에 잠시 다저스에 있었던 찰스 존슨을 제외하고는 없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이전의 주전 포수였던 마이크 피아자나 토드 헌들리 등은 타격에서는 활약했을지언정 포수로서의 능력은 모두 낙제점이었다. 그리고 이들이 홈플레이트를 지키고 있는 동안 다저스는 다른 포지션의 좋은 선수들에도 불구하고 별다를 성적을 올리지 못한 것이 사실이었다.

공격력이 뛰어난 포수는 팬들을 즐겁게 해줄지는 몰라도 팀을 우승으로 이끌기는 대단히 힘든 것이 사실이다.

2. 크루터의 타격은 약하지 않다.

채드 크루터를 낮게 평가하는 이들은 그러한 논리의 가장 주된 이유로 그의 약한 타격을 든다. 사실 그의 타율은 2할대 초반의 형편없는 타율임에는 틀림없다. 홈런 개수도 손에 꼽을 정도이다. 그러나 그의 타격기록에서 한가지 눈에 띄는 점이 있다, 바로 출루율.

올시즌 그의 출루율 .392는 다저스 주전급들 가운데 팀내 주포 게리 셰필드(.413)를 제외하고는 가장 높은 기록이다. 톱타자인 톰 굿윈(.291), 마키스 그리솜(.265)은 물론 중심타자인 션 그린(.350)이나 마크 그루질라넥(.343) 보다도 높은 기록이다.

그는 볼넷을 고를 줄 아는 뛰어난 선구안을 가진 타자이다. 물론 로두카에 비해 타율이나 홈런 개수에서는 쳐지는 것이 분명하지만 적어도 크루터가 팀 공격에서 공헌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크루터의 타격이 문제가 된다면 알렉스 코라나 톰 굿윈은 당장 마이너리그로 내려가야 한다. 어쩌면 에릭 캐로스도 같이 가야할지도 모른다.

3. 벤치에 앉아야 할 선수는 크루터가 아니라 캐로스다.

로두카의 공격력을 살리기 위해 그를 주전으로 기용하기에는 포수라는 포지션은 너무 부담이 되는 포지션이다. 로두카의 공격력을 살리기 위해 그를 기용해야 한다면 차라리 그를 1루수로 기용해야 한다.

팀 내 주전 1루수 에릭 캐로스는 타율 .254에 홈런 8개라는 초라한 성적을 기록하면서 공수에서 팀에 큰 공헌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의 다저스의 지구 우승과 포스트시즌 진출을 위해서 짐 트레이시 감독의 과감하고 신속한 결단이 있어야 한다. 문제는 정작 다른 곳에 있는 데 엉뚱한 데 신경 쓸 필요는 없는 것이다.

LA타임즈의 플라스키가 아마도 한국 속담을 알고 있다면 "찬호가 명필이라는 붓을 가려서는 안 된다."라는 속담을 인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서는 한가지 정말로 알아둘 필요가 있다. 정말로 명필들은 최고급 재질의 최고급 붓만을 사용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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