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책읽기] 세계가 들어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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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위 선배 한 분은 제주도에 조차 가보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도 파리나 뉴욕의 뒷골목까지 꿰뚫고 계시지요, 책을 통해서요. 단순히 걸어다니는 백과사전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통찰력을 가지게 된 분이지요.

'세계문명기행'

1999년 9월말부터 2001년 1월까지 그리스를 시작으로 이집트, 이스라엘, 인도 등 고대 인류 문명의 발상지 10여개국을 찾은 기록입니다. 지프로 4만 킬로를 달리면서 그날의 여정과 감상을 일기로 옮긴 웬만한 사전 두께의 책입니다.

유적을 돌면서 과거를 읊어댄 것은 아닙니다. 황량한 잡초와 도둑떼들만 남은 그곳들을 오늘의 눈으로 보고, 지난 천년을 되새기며 앞으로의 천년을 준비하고 있지요. 작가는 고쳐쓰기도 하지 않는 글쓰기로 그날 그날을 카메라로 찍듯 생생하게 그려 냈습니다. 편집조차 하지 않은 싱싱한 날 것이지요.

책은 홍콩의 대표적인 방송국의 밀레니엄 기념사업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중국인의 관점에서, 중국인을 위해 쓰여졌기에 다소 거슬리는 부분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조금만 달리 생각하면 미래를 향해 기지개를 켜는 중국의 모습까지 한꺼번에 볼 수 있기에 더욱 유익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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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기행'

언제부터인가 국내에서도 영적인 땅의 대명사가 된 인도. 뭔가에 홀린 듯 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찾고 그 만큼 많은 책들이 지도를 자청하고 나서게 됐지요.

책은 11년만에 개정돼 나온 것입니다. 80년대 거대한 격변의 와중에 서있던 저자가 4개월간 구원을 찾아 걸었던 발자취가 들어 있지요. 10년 만에 그 기억을 더듬어 손질했고 40장의 컬러 사진까지 보태 더욱 생생하게 되살려 놓았습니다.

인도에 대한 관심이 지금처럼 흔하지 않았던 시점의 기록이라 오히려 신선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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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한 웃음'

바깥 세상만 열심히 쳐다보면 안되지요. 먼저 나를 알고 우리를 알아야 겠습니다. 오늘 한국 사회는 새로운 것만 좇느라 전통과 인습을 구분 않고 해묵은 것은 죄다 쓸모 없는 것으로 돌려버리는 폐단에 젖어 있습니다. 어른들의 이야기를 넘겨 듣기 시작한지 오래지요.

대학에서 국문학을 가르쳐 온 팔순을 넘긴 '할아버지'인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한 번 귀를 기울여 보세요. 그리 멀지 않은 우리 모습이건만 별천지 얘기처럼 재미납니다. 교훈적이지만 옛날 이야기란 게 원래 재미있잖아요.

고부 갈등에 시달리던 옛날 며느리들이 시댁 식구들을 어떻게 욕했는지, 청상과부가 된 딸을 행복하게 해주려고 보쌈을 시켰던 친정 부모들의 이야기, 지금은 뜻도 모르고 쓰는 우리말에 담긴 묘미와 풍수설화에 얽힌 이야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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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련없이 버리는 정보 활용술'

끝으로 '실용서적' 하나 소개합니다. 사실 지난주 휴가를 다녀 오느라 이 코너도 한 번 쉬었는데요. 그 사이 제 업무용 메일이 무려 3백통이 넘게 쌓였답니다. 하지만 요즘은 별로 특별한 경우도 아닐 겁니다.

어디 메일 뿐입니까. 정말 눈뜨고 있는 내내 쏟아지는 각종 정보에 젖어 정신 말릴 겨를이 없지요. 인간이란 대개 하루가 지나면 10% 내외의 정보만을 기억할 뿐이라는데 이거 원.

그래서 이 책이 눈에 띄었습니다. 정보를 모으는게 아니라 쓸모있는 것과 없는 것을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구분할 수 있느냐가 중요해진 시대니까요. 과감하게 버릴 것을 버리고 중요한 것을 건져내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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