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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 덕에 내가있다" 盧,정수장학회 반환 요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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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대선 쟁점으로 떠오른 정수장학회 논란의 출발은 부일(釜日)장학회다. 부일장학회는 조선견직(1946년)·부산일보(1949년)를 소유한 기업인 김지태(1908~82)씨가 58년 11월 부산일보의 이름을 따 설립했다. 4년 뒤 62년 6월 김씨는 장학회의 부산시 서면 일대 토지 33만1064㎡(약 10만147평)와 본인 소유 언론사 주식(부산일보 및 MBC·부산MBC)을 국가에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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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씨는 해방 직후 부산의 최대 거부로 꼽혔던 인물이다. 그는 27년 부산 제2상업학교(부산상고 전신)를 우등생으로 졸업한 뒤 학교장 추천으로 일본의 식민지 수탈기관인 동양척식회사(동척) 부산지점에 취직했다. 5년 뒤 폐결핵으로 퇴사할 때까지 이곳에 근무했다. 김씨를 좋게 본 일본인 지점장이 울산의 동약척식주식회사 소유 전답 2만 평을 헐값에 10년 분할상환이란 파격적인 조건으로 그에게 넘긴 게 부를 이루게 된 계기다. “연부금을 갚고도 100석이 족히 남았다”고 김씨의 전기(『문항라 저고리는 비에 젖지 않았다』)에 소개돼 있다.

 김씨는 35년 울산 농장을 담보로 조선지기(제지업체)를 인수했다가 일본의 만주침략과 태평양전쟁 특수로 큰돈을 벌었다. 그는 이 돈으로 부동산·실크섬유·고무산업에 투자해 해방 이후 ‘서울의 이병철-부산의 김지태’란 얘기가 나올 만큼 재산을 모았다. 언론에 관심이 많던 그는 49년 적자에 허덕이던 부산일보를 인수한 데 이어 59년 라디오 상업방송인 부산문화방송(부산MBC)을 인수하고, 이를 모태로 61년 한국문화방송(MBC)도 설립했다.

 그러다 5·16으로 군부가 집권한 뒤 62년 4월 부정축재와 재산도피 등의 혐의로 중앙정보부에 구속됐다. 중정 부산지부는 그에게 부정축재처리법, 외국환관리법, 농지개혁법 위반 등 9개 혐의를 적용했다. 이게 부일장학회와 언론사 지분을 내놓게 된 계기였다. 당시 김씨의 부인 송혜영씨가 7캐럿짜리 다이아몬드반지를 밀수한 혐의로 먼저 구속됐고, 해외출장 중이던 김씨는 귀국과 함께 연행돼 재판을 받았다. 김씨 소유의 부산일보, 조선견직, 한국생사의 회사 임직원 등 10여 명도 함께 구속됐다. 김씨는 군사재판에서 징역 7년형을 구형받았다. 바로 그 다음 날인 62년 5월 25일 재산 포기각서를 작성했고, 6월 20일 기부승낙서에 서명했다. 그리고 이틀 후인 6월 22일 군 검찰의 공소취소로 석방됐다.

 이에 대해 박근혜 후보는 21일 기자회견에서 부정축재자였던 김씨가 재산헌납 카드로 ‘딜’을 시도한 것이란 취지의 언급을 했다. 그러나 유족 측은 “평소 민주당 거물 정치인들과 교류한 데다 5·16 직전 부산 군수기지사령관이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거사자금 500만환 지원요청을 거절했다가 비협조자로 찍혔기 때문”이라며 보복설을 제기하고 있다.

 김씨의 재산기부가 불법강탈이냐, 자진헌납이냐는 논란은 노무현 정부 들어 거세졌다. 노 전 대통령은 진영중학교 재학 시절(1959~63) 부일장학금을 지원받았다. 그는 김씨의 부산상고 후배이기도 하다. 노 후보는 통일민주당 의원이던 88년 10월 김영삼 전 대통령 등 부산지역 의원 13명과 함께 국회에 ‘부일장학회’ 반환 청원을 소개한 적도 있다.

 대통령이 된 뒤 “그분(김지태) 덕에 내가 있다”고 할 정도로 정수장학회 반환을 요구하는 유족들을 측면 지원했다. 여당인 열린우리당도 2004년 3월 박근혜 후보가 한나라당 대표에 취임한 이래 “정수장학회는 장물”이라고 공격하며 박 후보의 이사장 퇴임(2005년)을 압박했다. 70년대 후반 박 후보가 영부인 역할을 할 당시 청와대 공보비서관을 지낸 최필립씨가 후임 이사장에 취임하자 야권은 계속 박 후보의 관련성을 제기하며 공세를 벌였다.

 2005년 7월엔 국가정보원 과거사위가 “강요에 따른 헌납”이라고 조사 결과를 발표한 데 이어 2007년 6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위원회가 “국가가 김지태씨 유족에게 손해를 배상하라”고 권고하기도 했다. 과거사위 발표를 근거로 김씨 유족들이 법원에 반환청구소송을 냈으나 서울중앙지법 민사17부는 지난 2월 “김지태씨가 국가의 강요에 의해 주식 등을 증여했다고 해도 당시 김씨가 석방된 뒤로부터 민사상 계약의 취소기간(10년), 손해배상 시효(10년) 모두 지났다”며 청구를 기각했다.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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