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들이여, 사표 대신 책을 써봅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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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입사 5, 6년차 대리들이 뭉쳐 LTE 관련 첫 대중서적을 냈다. 왼쪽부터 김현구 LG유플러스 대리, 편석준·임정선 KT 대리, 주영현 SK텔레콤 대리, 박종일 KDB대우증권 대리. [사진 LG유플러스]

업무가 익숙해지면서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다. 입사 때의 당찬 포부는 어디로 갔는지 조직의 부품이 된 듯한 기분에 시달린다. 그러다 결국에는 대학원 홈페이지를 기웃거리며 사표를 만지작거리게 되는 게 입사 5, 6년차 대리들이다. 한데 “사표 대신 책을 쓰라”고 말하는 대리들이 있다. 이동통신3사와 증권사에서 일하는 이들은 최근 『LTE 신세계』란 책을 냈다. 4세대 이동통신망 서비스 롱텀에볼루션(LTE)에 관한 첫 대중서적이다.

 시작은 올해 초였다. KDB대우증권에서 모바일 금융거래 사업을 담당하는 박종일(33) 대리가 아이디어를 냈다.

 “대기업에 다닌다고 다들 부러워하는데 저는 정작 불안했어요. 회사만 왔다 갔다 하다가 끝날 것 같았거든요. 모바일이란 제 업무 분야에서 미래를 찾고 싶었습니다.”

 대학 시절 같은 회사에서 인턴을 하며 만난 김현구(33) LG유플러스 대리, 주영현(32) SK텔레콤 대리, 편석준(31) KT 대리와 임정선(29) KT 대리가 동참했다.

 책을 낸다는 게 쉽지는 않았다. 평일엔 업무가 끝난 뒤 회사에 남아 글을 썼고 주말엔 노트북을 들고 집 근처 카페로 나갔다. 결혼 3년차 주부인 임 대리는 “시댁과 친정의 대소사도 제대로 못 챙길 땐 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이러나 싶어 그만두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책을 쓰면서 “전문가란 의식을 갖게 됐다”고 이들은 입을 모았다. 사실 책을 쓰는 내내 이들을 가장 괴롭혔던 게 바로 전문성이었다. ‘과연 우리가 LTE 시장의 미래를 전망할 만한 전문가인가’ 의심이 들었다고 했다. 주 대리는 “책을 써 나가면서 업계 상황과 시장 변화를 현장에서 파악하는 우리 대리들이야말로 기업 최고경영자(CEO)나 교수 못지않은 또 다른 의미의 전문가라는 믿음이 생겼다”고 말했다.

 사업을 큰 틀에서 이해하는 능력도 갖추게 됐다. 김 대리는 “실무자는 맡은 업무는 잘 알지만 다른 업무를 모르기 때문에 사업이나 시장이란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며 “책을 통해 통신시장 자체에 대해 더 입체적으로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들은 “마라톤 같은 직장생활과 인생을 버티는 ‘근육’을 얻었다”고 입을 모았다. “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버티려면 기초체력이 좋아야 하는데, 출판을 통해 바로 그걸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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