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군 자존심 무너뜨린 장성 출신 초선 의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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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정용수
정치부문 기자

“일어서, 앉아.” 군대 다녀온 분들은 알 거다. 신병 훈련 받을 때 ‘일어서, 앉아’가 뭐 하는 건지. 줄이 흐트러지거나, 주의가 산만해질 때쯤이면 교관이 어김없이 입에 올리는 말 아니었나.

 그런데 느닷없이 지난 19일 국정감사장에서 ‘일어서, 앉아’가 등장했다. 오후 4시를 갓 넘긴 시간. 기무사령관을 지낸 예비역 중장 김종태 새누리당 의원(63·경북 상주)이 마이크를 잡곤 “제복 입은 현역 군인들은 다 일어나세요”라고 했다. 국감장 안의 장성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주저주저하자 같은 말을 두 세 차례 반복했다. 일어섰다 앉으려는 정승조 합참의장에겐 “더 하기 싫으십니까”라고 쏘아붙였다. 결국 국감장에 모인 40여 명의 장성들이 모두 일어섰다. 별의 숫자로 따지면 60개가 넘었다. 김 의원은 말을 이었다. “다음 군 통수권자가 누가 되더라도 따라야 합니다. 내 말이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앉으세요.” 그러자 별들은 모두 앉았다.

 이 장면은 국회 TV와 인터넷을 통해 예하 부대에 그대로 전달됐다. 국감장 밖에서 대기 중이던 참모와 수행원들도 다 봤다. 여기저기서 불만 섞인 탄식이 쏟아져 나왔다. 신병도 아니고 장성에게 뭐 하는 짓이냐, 아직도 자기가 사령관인 줄 아는 모양이지, 부하 지휘관들이 보면 뭐라 생각하겠나….

 국감장에서 ‘일어서, 앉아’를 했던 한 장성은 “김 의원이 ‘노크 귀순’ 사건과 관련해 경계 실패에 대해 따끔하게 질책하기 위해 일어서라고 하는 줄 알았다”며 불쾌감을 감추지 못했다. 또 다른 장성은 “부하들 낯을 어떻게 봐야 할지 모르겠다”며 당혹했다.

 이날 김 의원은 전직 기무사령관으로서 후배 장성들의 군기를 잡기 위해 그랬을 수 있다. 또 자기 말 한마디에 별 60여 개가 ‘일어서, 앉아’를 했으니 국회의원의 위상이 어느 수준인지도 확인했을 법하다.

 그러나 그가 간과한 게 있다. 군 선배로서, 국회의원으로서 자신의 권위는 확인했을지 몰라도 현역 장성들의 권위와 위신은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현역 장성은 국회의원이나 예비역 장군의 부하가 아니다. 그들은 국가와 국민의 안녕을 위해 존재하는 대한민국 군의 리더들이다.

 김 의원은 이번 국감에서 현역과 예비역들의 복지 개선에 대한 정책질의에 시간을 많이 할애했다. 자신의 경험상 군인의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수많은 군인들이 공감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그의 노력은 ‘일어서, 앉아’ 해프닝에 가려 버렸다. 김 의원은 3사관학교 생도대장과 교육사령부 부사령관을 지냈다. 사기와 명예를 먹고 사는 군인들의 속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또 그런 식으로 교육했던 주인공이다. 그렇다면 김 의원부터 군의 자긍심과 권위를 지켜줬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