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 폭탄 테러, 내전 도화선 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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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20일(현지시간)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폭탄 테러로 숨진 위삼 알하산 장군 등 8명을 시민들이 밤새워 추도하고 있다. 레바논 정부는 이날을 희생자들을 기리는 국가 추도일로 지정했다. [베이루트 AP=연합뉴스]

레바논 수니파의 대표적 지도자 중 한 명이었던 정보 당국 수장이 차량 폭탄 테러로 죽으면서 레바논에서 종파 분쟁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갈등이 격화할 경우 수십만 명의 희생자를 냈던 ‘레바논 내전(1975~90년)’의 악몽이 재현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정보 당국 수장 위삼 알하산이 숨진 것은 지난 19일(현지시간). 수도 베이루트 동부 중심가 아쉬라피예 지역에 주차돼 있던 차량이 폭발하면서 알하산을 포함해 최소 8명이 숨지고 80여 명이 다쳤다고 로이터통신 등이 보도했다. 알하산은 북부 도시 트리폴리 출신의 수니파에 속해 있다. 2005년 암살된 라피크 하리리 전 총리의 최측근이었다. 알하산은 이 사건에 시아파 분파인 알라위파가 지배하는 시리아가 연루됐는지 조사하는 중이었으며, 불과 두 달 전에도 시리아 장성이 연루된 폭탄 테러 음모를 사전에 밝혀냈다고 영국 BBC방송은 전했다.

 이에 레바논 수니파는 당장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을 이번 사건의 배후로 지목하고 나섰다. 분노는 집권 세력을 향해서도 표출됐다. 현재 레바논은 시아파와 알아사드 정권을 비호하는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 친시리아 기독교 세력 연정이 다스리고 있기 때문이다.

레바논 곳곳에서는 수니파 시위대와 진압군의 충돌로 부상자가 발생했다. 알하산의 고향인 트리폴리 인근의 알라위파 거주지역에서는 총격전이 발생해 4명이 다쳤다. 나지브 미카티 총리가 이끄는 내각은 임시 정부가 구성되는 대로 총사퇴하겠다고 밝히는 등 급히 사태 수습에 나섰다.

 레바논 안팎에서는 내전 이후에도 잔존했던 종파 간 분쟁의 불씨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나오고 있다. 이웃 나라 시리아에서 다수 수니파가 소수 알라위파 정권에 맞서는 내전이 발생해 알아사드 정권 지지 여부를 두고 국민 감정이 크게 엇갈리던 터였다. 레바논에서는 수니파가 소수로 전체 인구의 30% 정도를 차지한다.

 특히 21일 치러진 알하산의 장례식에는 수천 명이 운집해 정치적 시위와 다를 게 없이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성난 시위대가 정부청사 진입을 시도해 정부군이 기관총과 소총 등을 발사하기도 했다.

유지혜 기자

◆레바논 내전=1975년 팔레스타인 난민의 무장단체와 기독교 민병대 ‘팔랑헤’ 간 분쟁이 전국적인 종교·종족분쟁으로 확대된 것으로 90년까지 계속됐다. 이로 인해 최소 12만 명이 숨졌고 부상자만 100만 명 이상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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