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서양인 얼굴의 전라도 출신 다문화가정·탈북자 도울 생각”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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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3호 06면

인요한(53·미국명 존 린튼·사진) 연세대 의대 가정의학과 교수는 전북 전주에서 태어나 순천에서 자랐다. 연세대 의대를 졸업하곤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을 맡았다. 1993년 한국형 구급차를 개발해 119응급구조의 기초를 닦고, 친형 인세반(62)씨와 함께 26차례 방북해 북한 결핵 퇴치 사업에 나섰다. 올 3월엔 한국 국적을 얻었다.

인요한 새누리당 ‘100%대한민국대통합위원회’ 부위원장

그는 4대에 걸쳐 한국에서 의료·교육 봉사를 해온 집안 출신이다. 그의 진외조부(아버지의 외할아버지)는 1895년 호남 지역에 파견된 유진 벨(한국명 배유지) 선교사다. 할아버지 윌리엄 린튼(한국명 인돈)은 일제강점기 때 항일운동에 참여했고, 한남대를 설립했다. 아버지 휴 린튼(한국명 인휴)은 한국전쟁에 참전했고, 순천에 결핵진료소와 요양원을 세웠다.

그런 그가 16일 한국 정치 참여를 알렸다.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의 ‘100%대한민국대통합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임명됐다. 19일 국제진료센터에서 그를 만나 정치에 참여하는 이유를 들었다. 그는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로 답했다.

-박 후보와의 인연은.
“15년 전 캐나다 대사관에서 처음 만났다. 박 후보에게 ‘어머님이 (북한 지령을 받았다는 문세광의 총탄에)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북한 가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날 수 있었나’라고 물었다. 박 후보는 ‘가족 일은 가족 일이고 국가 일은 국가 일입니다’ 하더라.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후 여러 행사장에서 만났는데 지난해 말 전화가 왔다. ‘비대위 들어오세요’라고. 내가 ‘아직 외국인이고, 의사로 일생을 마치려 한다. 못 도와드린다’ 하니 섭섭해하면서도 ‘이해한다’고 했다.”

-이번에는 왜 응했나.
“개천절 날 박 후보 밑에서 일하는 교수가 집으로 찾아왔다. ‘남북 화해, 다문화 가정 정착, 지역갈등 해소를 위해 도와달라’는데 딱 나인 거다. 북한을 많이 다녔고, 서양인 얼굴이고, 전라도 출신이다. 앞으로 5년은 세계 경제가 어려워 신중한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세계 불황에서 한국이 뛰어오를 기회를 놓치지 않을 사람이 박근혜라고 본다. (공동중앙선대위원장인) 김성주 (성주그룹) 회장과도 NGO 활동을 통해 아는 사이다. 박 후보의 제안을 받은 상태에서 둘이 만났는데 ‘손해 볼 것밖에 없지만 한국을 얼마나 사랑하는지에 대한 테스트’라고 내가 말했다. 우리는 과거 한나라당의 석연치 않은 이미지를 파괴하고 싶다.”

-민주당과 가깝지 않았나.
“우리 조상은 스코틀랜드 사람인데 반골이다. 미국 남장로교도 반골이다. 그 반골 기질이 내 몸 안에 있다. 광주 항쟁 때 내가 외신들 통역해서 정부에서 추방령이 떨어졌다. 김대중 대통령 당선된 날엔 밤을 새웠다. 눈물이 나고 기뻐서. 김 대통령은 일평생 존경한다. 비공식적으로 치료도 해드렸는데 세 번이나 주치의로 들어오라더라. 너무 하고 싶었다. 하지만 ‘한국 의사가 뭐 부족하다고 외국 의사 쓰나’란 말이 나올까봐 거절했다. 노무현 대통령 당선 땐 비행기 타고 미국에서 서울로 오고 있었다. 기장에게 라디오로 대선 결과를 알아보라고 부탁할 정도로 관심이 컸다. 그런데 두 정권에 너무나 실망했다. 대통령 주변 사람들은 소외된 이웃을 공약으로 약속한 만큼 챙기지 않았다. 부정부패에 넘어갔다. 지금 민주당은 내가 어렸을 때의 민주당이 아니다. 전라도에서 배운 게 순정과
의리인데 전라도에 감사하지만 대한민국 사람이 됐으니 전체를 생각해야 한다. 노무현 정부에서 고위층을 지낸 친구에게 ‘어떻게 해야 할까’라고 물었더니, 그
분이 ‘거기(새누리당) 들어가 도와드려라. 거기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하더라. 김성주 회장도 노무현 대통령에게 김현종(전 통상교섭본부장)을 소개했던 사람
이다. 나와 김 회장은 당을 초월했다.”

-문재인 후보를 어떻게 보나.
“인상이 깨끗하다. 하지만 주변 사람 중에 노무현 정권 때 실망스러운 정책을 폈던 이들이 있다.”

-안철수 후보는 어떤가.
“신선하고 깨끗한 이미지다. 하지만 경험이 많지 않은 게 걱정스럽다.”

-북한에 자주 오가는데 새누리당 활동의 영향은 없을까.
“조만간 북한을 방문하는데 그쪽 반응은 국경 넘었을 때 알게 될 거다. 보수 정권이 북한과 진정한 협상을 이끌 것이라 확신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북방한계선(NLL) 발언에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은데 국민은 진보가 북한을 상대하는 걸 불안해할 것 같다. 노무현 대통령이 인수위 때 ‘우리가 북쪽에 잘하면 거기도 우리한테 잘하지 않을까요, 핵도 포기하고’라길래 내가 ‘굉장히 낭만적인 얘기다. 안보엔 맞지 않는 것 같다’ 했다. NLL은 사실 미국이 포기하려 했었다. 휴전협정 때 통역을 맡았던 리처드 언더우드(연세대 설립자 후손)가 연평도·백령도에 가본 적이 있어 사령관에게 ‘백령도를 포기하면 중국을 감시할 수 있는 곳이 없어진다’고 설득했다는 걸 최근에 들었다. 그래서 NLL이 생겼다는 거다.”

-가족들은 정치 참여에 뭐라 하나.
“스테판(인세반) 형님이 ‘걱정은 되는데 잘 판단했을 거라 믿는다’더라.”

-앞으로 할 일은.
“감투를 위해 여기까지 오진 않았다. 새누리당이 국민의 호소를 듣는 당이 됐으면 한다. 다문화 가정과 탈북자가 잘살 수 있는 나라가 돼야 한다. 다문화 가정을 포용하는 건 통일을 위한 연습도 된다. 남북관계가 진전되면 동서화합도 따라올 거다. 햇볕정책은 지지했지만 방법론에선 도로 포장 같은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을 했어야 한다. 가스관도 묻고, 러시아와 신의주까지 철도도 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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