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둥·쓰촨 음식 베이스 삼아 한식 특성 가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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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3호 26면

1 새롭게 개발한 ‘부추탕면’. 진한 육수의 깊은 맛과 부추의 쌉쌀한 맛이 잘 어울린다. 역시 새로운 메뉴인 ‘버섯 새우구이’를 곁들였다.

중국 음식 하면 무엇이 생각나시는지. 우선 짜장면을 떠올리는 분들이 제일 많지 않을까. 짬뽕·탕수육 정도가 뒤따라 나올 것이고, 아마도 라조기, 류산슬, 팔보채까지는 바로 갈 것이다. 그 다음에는? 음… 생각보다 쉽지 않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주영욱의 이야기가 있는 맛집 <4> 퓨전 중식당 ‘이닝’

사실 중국 음식의 세계는 ‘중국집 철가방에 바람처럼 날아오는’ 음식들의 세계보다는 훨씬 넓고도 깊다. 중국의 넓은 땅덩어리와 오래된 역사만큼이다. 그리고 잘 요리된 중국 음식은 참 맛있다. 세계 3대 음식의 명성에 잘 맞는다.

주위에 널린 것이 중국 음식점이지만 막상 일부러 찾아가겠다고 하면 선뜻 갈 만한 곳이 별로 없다. ‘배달용’ 음식이 아닌 정식 요리를 제대로 하는 식당이 많지 않은 탓이다. 그중에서도 너무 비싸지 않고, 요란하지 않으면서 편안한 곳을 찾겠다고 하면 더 난이도가 높아진다. 나에게 이런 조건들을 모두 만족시켜 주는 중국음식점은 바로 ‘이닝(伊寧)’이라는 곳이다.

2 이닝의 외부 전경. 3 일층 내부 전경. 단순하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의 인테리어가 트렌디한 퓨전 중국음식점의 이미지에 잘 어울린다.

찌거나 구워 담백한 맛
중국 음식 중에서도 기름기가 적은 광둥 지방이나 매콤한 쓰촨 지방의 음식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입맛에 잘 맞는다. ‘이닝’은 광둥·쓰촨 지방의 음식을 베이스로 해서 한식의 특성을 가미한 퓨전 중국 음식점이다. 정통 중국요리도 하면서 우리나라에서 나는 제철 음식 재료를 이용해서 철마다 다양한 새로운 요리들을 만들어 낸다. 봄이면 산에서 나는 봄나물을 굴소스에 볶아내고, 가을에는 능이버섯 요리를 하고, 겨울에는 홍합탕을 만들어 내는 식이다.

‘이닝’의 음식은 가능하면 기름에 튀기지 않고 스팀으로 찌거나 구워서 만들어내는 담백한 맛이 특징이다. 조미료를 많이 사용하지 않고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 내는 육수로 음식의 맛을 낸다. 보통 중국 음식은 기름기가 많은데 이곳의 음식은 그렇지가 않고 맛이 편안하다.

이미 ‘이닝’은 꽤 유명한 곳이다. 정치인, 경제인, 유명 연예인 같은 저명 인사가 많이 오는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오래된 단골들이 많아서 그들 사이에서는 ‘청담동 사랑방’으로 불리기도 한다. 2년 전에 단골 중 한 명이던 유명 배우가 세상을 떠난 이후부터는 일본 팬들이 매월 단체로 ‘성지순례’를 오기도 한다고 했다. 이렇게 유명하게 된 것은 음식의 맛이 훌륭한 이유도 있었지만 주인인 김은자(53) 사장의 친화력 덕분이기도 했다. 유명인이건 보통 사람이건 어느 누구에게도 스스럼없이 다가가서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능력이다. 그래서 주위에 좋아하는 ‘언니, 오빠, 동생’이 많단다.

김 사장은 1999년 ‘이닝’을 처음 시작했다. 원래 여러 가지 다른 사업들을 했었는데 워낙 음식을 좋아하기도 했고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서 교류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아서 음식점을 시작하게 됐다. 음식에 대한 김 사장의 관심은 어릴 적 서울 계동에서 음식점을 하시던 어머니로부터 시작됐다. 어머니는 이승만 대통령 때 이화장에 초대되어 가서 음식을 할 정도로 솜씨가 좋으셨단다. 돌고 돌아서 결국은 어머니의 뒤를 따르게 된 ‘모전여전(母傳女傳)’이다.

가을에 제격 ‘부추탕면’
얼마 전 들렀더니 새로운 계절 메뉴로 ‘부추탕면’이 나왔다. 부추는 피를 맑게 해주고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성질이 있다. 기름기를 중화시켜 주는 성질도 있어 건강식 재료로 아주 좋다. 중국 음식에서 탕 요리에는 부추를 잘 사용하지 않지만 일본의 유명한 라면집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이번에 새롭게 개발했다고 한다. 닭을 베이스로 한 뜨거운 육수가 아주 진하고 깊은 맛이 나면서 쌉쌀한 부추의 맛과 잘 어울렸다. 쌀쌀해지기 시작한 가을 날씨에 딱 어울리는 음식이다. 역시 이번에 새로 개발했다는 ‘버섯 새우구이’를 곁들이니 입안이 행복해졌다.

이미 나름의 명성을 굳혔지만 안주하지 않고 이렇게 매번 새롭게 노력하는 자세가 오늘의 ‘이닝’을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계절에는 이 ‘사랑방 누님’이 또 어떤 새로운 맛을 보여줄지 벌써 기대가 된다.

**이닝(Yining) 서울 강남구 청담동 22-12 (전화 02-547-7444)



주영욱씨는 따뜻한 마음과 정성이 담긴 음식을 찾아다닌다. 음식과 사람, 사진과 여행을 진지하게 좋아하는 문화 유목민. 마케팅 리서치회사 리서치파워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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