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나] 왕소영 정동극장 공연총괄팀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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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졸업 후 '서울 유학' 왔을 때 조숙했던 나는 잠시 쇼펜하워의 염세주의에 심취하기도 했었고, 종교에 빠져들기도 했다. 누구나 겪는 10대의 몸살이었을 것이다.

한참 나중에 발견한 레오 버스카글리아의 책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홍익출판사)를 만나며 적극적 사고를 배웠다. 즉 마냥 움츠러들려 했던 예전의 나를 '옛날 일'로 한차례 정리해볼 수 있었던 기회였다.

삶은 예측불가능한 것일까. 성악가의 길로 들어서 오페라 무대에서 살던 내가 공연 기획과 행정 일을 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20여년 가까이 예술가였던 내게 공연기획과 행정은 무대와 관객의 중간에서 촉매역할을 할 것을 요구했다.

'예술과 경영'(유민영 외 지음, 태학사)은 극장경영 전반에 대해 큰 도움을 주었다.

정동극장을 꾸려나가는 데 가장 어려운 점은 일반인들의 국악에 대한 무관심이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 자리잡은 꽤 유명한 극장에서 1997년부터 우리 전통예술을 항상 무대에 올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내국인들의 관심은 썰렁하다.

일본인 등 외국인 관광객에게 더 많이 알려져 관객의 80% 이상이 외국인이다. 일본 전통극인 가부키극장 관객의 90% 이상이 일본인인 것과 비교해 볼 때 부끄러운 일이다.

전통예술 공연의 홍보와 마케팅에 전전긍긍할 때 스펜서 존슨의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진명출판사)가 다시 한번 현실을 되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그 책이 신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를 옹호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문제가 없지 않은 책이라는 지적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우리 전통공연을 보며 기뻐하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환한 얼굴에서, 그리고 엄마 아빠 손을 잡고 국악공연을 보러 오는 가족들에게서 나는 새로운 치즈를 찾아 변화하는 스니프와 스커리의 모습을 떠올리고, 책의 주인공들을 따라 배워야겠다는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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