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검찰 “수사권 조정한 게 1년 전 … 법 안정성 해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4면

지난 4월 조현오 경찰청장 퇴임 이후 잠복 상태에 있던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 논란이 재점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새누리당 박근혜 대통령 후보가 19일 경찰 개혁안의 하나로 ‘검·경 수사권 분점(分占)’ 방침을 밝히면서다.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기소와 수사의 분리 원칙을 공개했고, 무소속 안철수 후보도 수사권 조정에 찬성하는 입장이라서 검찰과 경찰은 긴장 속에 진의 파악에 나섰다.

 검찰은 일단 공식 언급은 피했다. 아직 구체적인 내용이 담긴 공약이 아니라는 이유였다. 그러나 ‘수사권 분점’ 발언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해 개정된 형사소송법은 검사의 수사지휘 대상을 ‘모든 경찰 수사’로 명시하고 있다. 경찰의 독자적 수사 개시권을 양보하고 얻은 ‘최대 전리품’인 셈이다.

 한 검찰 간부는 “후보들마다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수사권 분점이나 기소-수사 분리는 형사소송법의 ‘코어(핵심)’를 건드리는 것”이라며 “법이 개정된 지 1년이 조금 넘었을 뿐인데 다시 수사권 문제를 거론하면 법적 안정성을 해치게 된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박 후보와 문 후보가 이날 내놓은 검·경 수사권 조정 발언에 대해 대체로 반기는 분위기였다. 경찰청 고위 관계자는 “두 후보 모두 수사권과 기소권의 분리에 대해 잇따라 언급했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방향을 잡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서울 지역 한 경찰 간부는 “박 후보의 경우 새누리당 기존 입장보다 경찰 의사를 많이 반영했고, 문 후보도 참여정부 시절부터 민생 범죄에 대한 (경찰의) 수사권을 긍정적으로 고려한 적이 있는 만큼 경찰 우호적인 것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반면 또 다른 경찰 간부는 “두 후보의 발언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수사권을 조정하겠다는 각론이 빠졌다”고 말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 논란은 반세기 넘게 끌어온 난제다. 1962년 5차 개헌 때 형사소송법에 ‘검사에 의한 영장 신청’ 조항이 명시된 뒤 경찰에 독자 수사권을 부여할지가 논란거리로 떠올랐다. 이후 2005년 참여정부 때 검찰과 경찰 간 갈등이 본격화됐다. 국회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가 형사소송법 개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당시 김종빈 검찰총장과 허준영 경찰청장이 갈등을 빚었지만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6년 만인 지난해 6월 갈등은 다시 불거졌다. 국회 사개특위가 경찰의 독자적 수사 개시권을 명시한 형사소송법 개정을 추진하자 홍만표 당시 기획조정부장 등 대검 검사장급 간부 전원이 사의를 표명하는 등 검찰의 반발은 거셌다. 그럼에도 법안이 통과되자 김준규 당시 검찰총장은 “수사권 조정 논란에 책임지겠다”며 사퇴했다.

 법 개정 이후에도 검·경은 수사 지휘 범위를 규정하는 대통령령 제정을 놓고 충돌했다. 올해 초엔 경찰이 검찰의 내사 사건 지휘를 거부하면서 마찰을 빚었다. 하지만 수사권 독립을 진두 지휘했던 조현오 경찰청장이 올해 4월 ‘우위안춘 사건’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면서 갈등은 수면 아래로 잠복했다.

 대선을 2개월 앞두고 다시 수사권 조정 문제가 제기되자 검·경 일각에선 곱지 않은 시선도 보내고 있다. 대검의 한 간부는 “대권주자들이 경찰 표를 의식해 나타난 현상 아니겠느냐”며 “수사권 문제가 본격화하는 것은 적어도 대선이 끝나고 새 정부가 들어선 뒤에야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 경찰청 간부도 “대선 후보들이 선심성 발언으로 경찰을 기만한다면 잃는 것이 더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검찰이 경찰 수사를 지휘하도록 명시한 형사소송법을 둘러싼 논란. 경찰은 관행적으로 수사해온 교통·절도·폭력 등 민생범죄를 비롯해 일부 수사권을 법으로 인정해줄 것을 요구해 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