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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보수 청년들 IQ 검사하니…" 파격 주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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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뇌과학의 비밀 영어로 브레인(brain), 뇌에 대한 연구가 급진전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감정과 의사를 결정하는 뇌, 그 미스터리의 두께는 우주만큼이나 광활합니다. 뇌의 신비가 한 꺼풀씩 하나하나 벗겨질수록 우리 인간 자체에 대한 이해도 깊어집니다. ‘뇌의 미래’를 진단하는 신간을 집중적으로 골라봤습니다.

지능의 사생활
가나자와 사토시 지음
김영선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316쪽, 1만5000원

동시대 최고의 과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스티븐 호킹에게 가장 풀기 어려운 문제는 무엇일까. 1999년 미국 유명 TV 토크쇼인 ‘래리 킹의 라이브 위켄드’에 출연한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여자들이요.”(스티븐 호킹)

 “동승하게 되신 걸 환영합니다.”(래리 킹)

 호킹 박사는 오늘날 영국에서 지능이 가장 높은 사람 중 한명으로 추정된다. 우주의 기원과 운명을 탐구해왔다. 대중과학서인 『지능의 사생활』은 IQ가 높은 사람일수록 연애·결혼·출산처럼 진화적으로 익숙한 영역을 잘 수행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반면 호킹의 말을 재치있게 받아 친 래리 킹은 어떨까. 그는 고등학교만 졸업한 평범한 지능의 소유자다. 그는 일곱 번 결혼했고, 다섯 아이를 두었다. 그러니 이 둘은 다른 의미에서 ‘여자’가 어렵다고 말한 셈이다.

 이 책은 학습능력에만 관계 있다고 믿었던 지능지수(IQ)가 취향·습관 같은 일상생활의 영역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면 지능이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보다 진보주의자가 될 가능성이 크고, 술·담배·마약을 좋아할 개연성이 높다는 것이다. 또 지능이 높은 사람이 취약한 부분도 많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다소 파격적인 주장을 미국 종합사회조사, 미국 청소년건강연구, 영국 어린이발달연구 등 장기간에 걸친 대규모 설문자료를 근거로 흥미롭게 풀어냈다.

[일러스트=강일구]

 ◆지능의 역설=진화심리학에 바탕을 둔 저자의 가설을 이해하려면 우선 ‘사바나의 원칙’을 알아야 한다. 인간은 1만 년 이상 아프리카 사바나의 수렵채집인으로 살았다. 이때 체득한 생활패턴이 우리의 뇌에 축적되어 있어 오늘날에도 영향을 미친다. 반면 이 시기에 없었던 ‘진화적으로 새로운’ 상황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데, 이것이 ‘사바나의 원칙’이다.

 대신 인간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자 특수적 심리기제로서 ‘일반 지능’을 진화시킨다. 결국 지능이 높은 인간일수록 ‘사바나의 원칙’에 덜 영향을 받게 되는 셈이다. 호킹 박사처럼 지능이 뛰어날수록 ‘진화적으로 새로운 것’을 지지하고 빨리 적응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역설적인 것은, 지능이 뛰어날수록 결혼이나 육아같은 ‘진화적으로 익숙한 것’에 취약하다는 점이다. 저자는 미국 수학영재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예로 들며 참가자 중 33세 남성의 64.9%, 여성의 69%가 아이가 없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30~34세의 남녀 중 26.4%만이 아이가 없는 것을 비교해 보면 큰 차이다. 이것이 바로 책의 핵심인 ‘지능의 역설’이다.

 ◆지능이 진보와 보수를 가른다=하나의 사례를 들어보자. 저자는 지능이 높을수록 진보적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진보는 ‘진화적으로 새로운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조상들은 사바나에서 동족으로 이루어진 작은 무리 속에서 살았고, 동족 외 낯선 사람에겐 이타적이지 않았다. 즉 더 많은 세금과 소득 이전을 통해 평등을 주장하는 진보는 조상들의 생활 패턴에 비추어보면 새로운 것인 셈이다. 실제로 미국 종합사회조사 통계를 보니, 자신이 ‘아주 보수적’이라고 생각한 20대 초반 청년들의 IQ가 평균 94.82인 반면, ‘아주 진보적’이라 생각한 청년들의 IQ는 평균 106.42였다.

 여기서 저자는 “만약 진보주의자가 지능이 높다면 어째서 바보 같은 말을 해서 신뢰를 떨어뜨리는 진보주의자가 보수주의자보다 많아 보일까(109쪽)”라고 의문을 제기한다. 바로 ‘지능의 역설’이다. 저자는 “진보주의자 같이 지능이 높은 사람들(intelligent)일수록 일상적응력이 부족해서 바보(stupid) 같을 가능성이 높다. 반면에 보수주의자 같이 지능이 낮은 사람(unintelligent)일수록 실용적인 상식을 가지고 있어서 똑똑할(smart)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지능이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보다 ‘진화적으로 새로운’ 동성애자·무신론자·채식주의자일 가능성이 높고, 클래식 음악을 더 좋아하며, 술이나 마약·담배를 즐기고, 결혼이나 출산의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설명한다.

 ◆IQ는 취향을 결정지을 뿐=저자가 이 책을 쓴 의도는 분명해 보인다. ‘IQ 만능주의’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이다. 지능이 높을수록 반드시 똑똑한 것은 아니며, 단순히 키·몸무게·머리카락 색깔처럼 인간의 여러 특성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한국판 제목으로 『지능의 사생활』을 정한 것은 아쉽다. 원제인 ‘지능의 역설(The Intelligence Paradox)’에 비해 책의 주제를 선명하게 드러내지 못하고 있어서다.

 파격적인 만큼 공격받기 쉬운 부분도 있다. ‘진화적으로 새로운 것’을 정하는 저자의 기준이 애매한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동성애가 이성애보다, 일부일처제가 일부다처제보다 진화적으로 새롭다는 것은 좀 더 세심한 근거가 필요하다. 또 IQ가 개인의 취향을 결정하는 유일한 요소인 것처럼 서술한 부분도 위험해 보인다.

 그럼에도 하나의 가설로서 IQ의 이면을 들춰봤다는 점에선 장점이 많은 책이다. 책에서 주지했듯, 저자가 ‘과학적 근본주의자(부도덕하거나 이상에 어긋난다 하더라도 과학적 사실에만 집중하는 입장)’라는 것을 전제하고 본다면, 새로운 주장으로서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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