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총기쓰지 말라고…" 한·중 외교 파장 예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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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죽봉 휘두르는 중국 선원들 지난해 11월 군산 어청도 해상에서 해경이 불법 조업을 단속하자 중국 선원들이 죽봉을 휘두르고 있다. [중앙포토]

불법조업 중이던 중국 어민이 단속 업무를 집행하던 우리 해경이 쏜 고무탄에 맞아 숨진 사건은 한·중 수교 20주년을 맞아 외교관계에 적잖은 파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정부가 자국민의 사망에 대해 불법조업 문제와는 별도로 우리 측 공권력의 과잉진압이라는 주장을 펼칠 태세이기 때문이다.

 외교통상부가 이날 외교 경로를 통해 중국 측에 신속하게 사건 개요를 알려준 것은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외교통상부는 중국 측에 책임 소재와 별개로 불행한 사건이 발생한 데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정부 당국자는 “무력으로 저항하는 선원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우발적인 사건”이라면서도 “인명 피해에 유감을 표명하는 등 외교적 사안으로 비화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이청호 해경 경장이 불법조업 단속에 저항하던 중국 어민이 휘두른 흉기에 살해됐을 때도 중국 정부는 조의 표시보다 체포된 중국 어민에 대한 선처를 먼저 요구했었다. 이 경장을 살해한 중국 어선 선장 청모(43)씨는 살인 혐의로 지난달 징역 23년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우리 수역에서 중국 어민들의 불법조업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중국 어민들은 중국 앞바다에서 어족 자원의 씨가 마르기 시작하면서 몇 년 전부터 한국 해역으로 넘어와 불법조업을 해 왔다. 한국수산회 수산정책연구소는 중국 어선들에 의한 피해액이 2004년 이후 연간 400억~13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우리 해경의 단속엔 흉기를 들고 저항해 크고 작은 불상사가 잇따랐다. 지난해 이청호 경장에 앞서 2008년 9월에도 박경조 경위가 중국 어민의 흉기에 찔려 숨졌다. 이에 정부는 국무총리실 주도로 지난해 12월 불법조업 근절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단속 해경의 생명에 위협이 있을 경우에 대비해 총기 사용 절차를 단순화한 지침도 마련했다. 당시 중국 정부와 언론은 “어민에게 총기를 사용하지 말라”고 강하게 항의했었다. 양국 정부는 중국 어선의 불법조업 문제를 다루는 한·중 어업협의체를 6월에 사상 처음 발족시켰고 외교당국 부국장급의 핫라인도 구축했다. 그러나 이런 다각도의 종합대책도 중국 어민들의 목숨을 건 불법조업을 막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중국 정부의 느슨한 단속도 원인이라고 우리 당국자들은 보고 있다.

 그럼에도 중국 정부는 상당히 강경한 입장을 밝힐 것으로 예상된다. 주한 중국대사관의 한 외교관은 16일 본지와 통화에서 “중국 정부가 그동안 총기를 사용하지 말아달라고 수차례 요청했는데 결국 우리 어민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해 유감”이라며 “중국 정부가 조만간 한국 정부에 공식 항의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중국 정부는 해경의 총기 사용을 놓고 정당한 법 집행을 넘어 과잉단속 과정에서 인명이 희생된 사건으로 몰아갈 가능성이 큰 것으로 관측된다. 이 경우 사고 원인 규명 과정에서 한·중 외교 갈등으로 번질 소지도 있다. 정부 당국자는 “이번 사건은 관계 당국이 관련 법규에 따라 조사와 사후 처리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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