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액대출 미끼로 스마트폰 개통 밀반출 … 3800명 당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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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유모(37·여)씨는 지난 7월 솔깃한 문자메시지 한 통을 받았다. “NO론입니다. 저금리로 신용대출 가능합니다”라는 내용이었다. 유씨는 최근 일자리를 잃어 생활고에 시달리던 차였다. 그는 즉시 문자메시지에 찍힌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상담원은 “20만원 소액 대출인데, 대출을 하려면 스마트폰 개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씨가 “왜 비싼 스마트폰을 개통해야 하느냐”고 하자 “정식 개통이 아니라 3개월만 유지하는 ‘가개통’이다. 이후 해지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유씨는 신분증과 인감증명서 사본을 팩스로 보냈다. 얼마 뒤 그의 통장으로 20만원이 송금됐다.

 하지만 이는 소액대출을 미끼로 한 사기였다. 유씨는 이후 스마트폰 단말기 비용 100여만원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다.

16일 경찰에 입건된 사기단이 전화상담원을 상대로 대출자 상대 요령을 교육시키기 위해 만든 매뉴얼.

 서울지방경찰청 경제범죄특별수사대는 사기 혐의로 최모(42)씨를 구속하고 이모(32)씨 등 16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16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개인정보 판매상으로부터 신용등급이 낮은 이들의 전화번호 수만 건을 산 뒤 집중적으로 대출 관련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이를 보고 전화한 2100명으로부터 35억여원을 챙겼다.

 최근 서민을 대상으로 한 휴대전화 소액대출 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스마트폰 보급이 크게 늘어난 지난해 시작돼 올해 급격히 늘어난 것으로 경찰은 파악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올 들어 8월까지 스마트폰을 미끼로 한 대출 사기는 총 7건에 피해자 3800여 명, 피해액은 61억원에 달한다.

 지난달에도 신용등급이 낮은 이들에게 ‘소액 대출’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스마트폰을 개통하게 한 뒤 이를 팔아넘겨 6억원을 챙긴 혐의로 김모(34)씨 등 3명이 구속됐다. 지난 3월부터 강원 원주, 경기 시흥 등에서도 휴대전화 대출 사기를 벌인 일당이 잇따라 붙잡혔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서민금융종합지원센터에 접수된 불법대출광고 피해 상담건수는 2만5535건으로 2010년(1만3528건)에 비해 88.8% 증가했다.

 휴대전화 대출 사기단들의 수법은 거의 동일했다. 우선 신용등급이 낮은 이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경찰 관계자는 “이런 유형의 사기 사건 피해자는 대부분 단돈 1만원이 급한 서민들”이라고 말했다.

 사기단은 대출자들에게 반드시 고가의 ‘스마트폰’을 개통하게 했다. 그러고는 “3개월만 유지하면 해지하도록 하겠다”고 설득했다. 이번에 붙잡힌 사기단도 실제로는 없는 ‘3개월 가개통’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피해자를 현혹했다. 사기단은 전화 상담을 하는 직원에게 ‘상담 매뉴얼’을 교육시키기도 했다.

 대부분의 사기단은 휴대전화 판매점을 끼고 범행을 저질렀다. 판매점은 스마트폰 한 대를 개통할 때마다 통신사로부터 지급되는 보조금 40만~60만원을 챙긴다. 피해자에게 ‘3개월 유지’를 강요한 이유도 통신사가 최소 3개월간 가입이 유지돼야 보조금을 환수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 중 20만~30만원을 대출 명목으로 피해자에게 보내 실제 대출이 이뤄진 것처럼 가장했다. 개통된 휴대전화는 용산 전자상가 등에 팔아넘겨 이득을 챙겼다. 최고 100만원이 넘는 단말기 할부금은 고스란히 피해자의 몫으로 돌렸다.

이렇게 팔린 휴대전화의 대부분은 유심칩을 뺀 상태로 중국 등 해외에 밀반출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 관계자는 “최근 보이스 피싱이 줄어드는 대신 휴대전화 개통을 미끼로 한 대출 사기가 급증하고 있다”며 “휴대전화 개통을 요구하는 대출은 모두 사기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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