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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건강검진 할 때마다 놀다가 시험 치는 기분 올해도 무사히 넘어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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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결국 예약을 했다. 더 이상 버티면 가정 평화에 문제가 생길지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 때문이다. 좋은 세상이다. 인터넷 클릭 몇 번 만에 건강검진 예약이 바로 끝났다. 전화할 필요도 없다. 나처럼 미루고 미루다 막판에 서두르는 사람이 많은 탓인지 연말까지 비어 있는 날짜가 많지 않았다. 찬바람 맞으며 병원에 가게 생겼다.

 병원에 가는 걸 좋아할 사람이야 없겠지만 나는 유독 좀 심한 편이다. 어떻게든 안 가려고 버틴다. 그때마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는 사태가 생기면 어쩔 거냐고 아내는 호들갑이지만 그래도 가기 싫은 것은 싫은 것이다. 건강검진도 그렇다. 딱히 아픈 데도 없는데 때 되면 밥 먹듯이 병원에 가는 게 싫다. 찜질방 가운 같은 걸 걸치고, 이 방 저 방 돌아다니며 온몸을 내보이는 것도 싫다. 내시경 검사 받는다고 병든 소처럼 누워 침을 질질 흘리는 꼴도 싫다.

 하지만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자. 진짜 이유가 뭘까. 워낙 켕기는 구석이 많아서 아닐까. 의사들이 하라는 것은 죽어라 안 하고, 하지 말라는 짓만 골라서 하는 생활습관이 불의의 ‘선고(宣告)’로 귀착되는 게 아닌가 싶은 불안감 말이다. 건강검진 받으러 갈 때마다 공부하지 않고 놀다 시험 치러 가는 기분이다.

 일본 작가 이쓰키 히로유키(五木寬之·80)가 쓴 『대하의 한방울』이란 책을 읽다가 내 맘에 쏙 드는 대목을 발견했다. 그는 인간은 이중나선구조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 일반적인 인간으로서의 나와 누구와도 같지 않은 유일무이한 존재로서의 내가 이중나선처럼 교차하는 곳에 나라는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인 인간을 다루는 과학이나 의학의 힘만으로 나의 병을 재단하고 치유하는 건 무리라는 것이다. 걸핏하면 병원을 찾기보다 마음이 내키지 않는 일은 안 하고 사는 편이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는 가급적 병원(치과는 예외) 근처엔 얼씬거리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며 지금까지 살아왔다고 말한다.

 특별히 몸이 아픈 데는 없지만 마음이 편치 못하다. 몸이 나른하고, 모든 게 시큰둥해 보인다. 이 나이에도 가을을 타는가 싶어 의사 친구에게 물어봤더니 계절성 우울증일 수 있다고 한다. 일조량이 감소하면서 생체리듬을 조절하는 멜라토닌 분비가 줄어든 탓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바깥 활동을 통해 가급적 햇볕에 몸을 많이 노출시키라고 권한다.

 몸이고 마음이고 100% 건강한 사람이 어디 있을까.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보이거나 혹은 안 보이는 병을 숙명처럼 안고 사는 것이 인간 아닐까. 굳이 그걸 이 잡듯이 뒤져 기필코 찾아내고 말겠다는 의욕 과잉이 문제 아닐까. 올해도 무사히 넘어갈까. 병원에 갈 일이 벌써 걱정이다.

글=배명복 기자
사진=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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