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산사고 피해 키운 행정 관할권 떠넘기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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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한국산업단지공단에서 지난 2일 제출받은 자료엔 ‘불산 가스’ 누출 사고의 관리·감독 기관이 ‘가스안전공사’로 돼 있었다. 그런데 6일엔 감독기관이 ‘지방환경청’으로 둔갑했다. 9일엔 ‘한국환경공단’으로 바뀌었다.”

 홍의락(민주통합당) 의원은 15일 산업단지공단에 대한 국정감사 서 “ 유해화학물질의 관리 담당이 어딘지도 오락가락한다”며 “정부가 초기 늑장 대응과 부실 조치로 피해를 키운 이유가 있었다”고 질타했다.

 경상북도 구미 산업단지의 불산 가스 사고에서 불거진 당국의 무책임 대응과 감독 체계가 국감에서 집중 성토 대상이 되고 있다. 의원들은 “인재가 아니라 ‘관재(官災)’”라고 비판했다. 처음 불을 댕긴 사람은 김제남(새진보정당추진회의) 의원. 그는 지난 8일 지식경제부 국감에서 부처 간 ‘관할권 미루기’로 사고 조기 진압에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구미 사고 이후 지경부는 탱크 로리에 들어 있던 불산 가스가 ‘고압가스안전관리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대신 환경부 소관인 ‘유해화학물질관리법’의 대상이라며 현장 서 발을 뺐다. 특정 압력 이상으로 압축돼야 가스법 적용을 받는데 불산은 이 기준에 해당되지 않는 증발성 액체였다는 것이다. 지경부 산하의 가스안전공사도 “법 때문에 나서기 곤란하다”며 책임을 미뤘다. 실제 기자가 지경부·가스안전공사 관계자에게 수습 대책을 묻자 “우리 소관이 아니다”라는 답만 돌아왔다.

 김제남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산업단지공단 대구경북권본부는 지난 3월 독성가스 대규모 유출 등을 상정한 ‘재난 시 행동 매뉴얼’을 만들 때 지경부와 협의했다. 매뉴얼은 고압가스법과 함께 유해화학물질관리법·재난법 등 다수의 관련법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김 의원은 “매뉴얼이 있는데도 산업단지공단은 주민 대피, 유해물질 제독법 전파 등을 제대로 시행치 않았다”며 “상급 관청인 지경부는 불산 사고의 책임소재를 둘러싼 법적 해석만 따졌다”고 지적했다.

 홍의락 의원은 이날 국감에서 “산업단지공단은 입주 기업체에 안전지도를 할 의무가 있는데 안 지켰다”고 지적했다. 사고가 난 구미산업단지엔 1600개 입주업체와 8만3000명의 고용자가 있다. 그러나 3년간 재난 대비 훈련은 5회(517명)에 그쳤다는 것이다.

 홍석우 지경부 장관은 14일 오후 구미 사고 현장을 첫 방문해 “피해 주민과 기업에 최대한 빨리 피해 보상이 이뤄지게 하겠다”며 “유사한 사고가 재발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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