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선 540만원 샤넬백, 한국선 가격이…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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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핸드백으로 가득 찬 인천국제공항 1층의 세관 유치품 창고. [중앙포토]

지난 8월 말 인천공항. 필리핀 세부발 항공편으로 입국한 이모(29)씨가 세관 검사를 받았다. 출국 전 시내 면세점에서 3000달러짜리 시계를 산 기록이 있었다. 시계는 이씨에게서 발견되지 않았다. 이씨는 “필리핀에 있는 친구에게 주고 왔다”고 했다. 같은 시간, 또 다른 세관 직원은 같은 항공편에서 내린 황모(29)씨가 손목에 찬 시계를 검사했다. 이씨가 면세점에서 산 바로 그 제품이었다. 황씨는 이씨와 모르는 사이라고 잡아뗐다. 시계는 한국 백화점에서 샀다고 우겼다. 하지만 세관 직원이 언제, 어디서, 얼마에 샀는지 꼬치꼬치 캐묻자 말문이 막혔다. 황씨는 결국 “친구 부탁으로 대신 갖고 들어왔다”고 시인했다. 이씨와 황씨는 모두 관세법 위반으로 각각 68만원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시계는 압수됐다.

 해외 여행객이 신고 없이 국내에 반입할 수 있는 면세 한도는 400달러. 하지만 이른바 ‘샤테크(샤넬+재테크)’를 노리고 수천 달러짜리 유명 브랜드 핸드백이나 명품 시계를 신고 없이 들여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단속을 피하기 위한 수법은 점점 교묘해진다. 가족이나 단체여행객 등에게 물품 반입을 부탁하는 불법 ‘대리반입’이 대표적이다.

 15일 관세청에 따르면 올 들어 8월까지 면세한도 초과로 걸린 입국객은 20만5000명. 지난해 전체 적발 건수(24만 명)의 85%에 달한다. 특히 최근엔 대리반입이 크게 늘었다. 이만우 새누리당 의원이 15일 관세청 국감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올 8월까지 세관에 적발된 대리반입은 총 194건, 4억9600만원어치에 달한다. 지난해 1년간 적발된 81건, 2억700만원보다 배 이상 늘었다. 대리반입이 가장 많은 건 역시 핸드백(145건)이다. 이어 시계(36건), 귀금속(8건), 의류(3건) 순이었다. 관세청에 따르면 대리반입을 하는 여행객은 일행인데도 남처럼 따로 움직인다. 아예 서로 다른 항공편을 이용하는 ‘시간차 입국’으로 추적을 따돌리기도 한다.

 대리반입까지 하면서 해외 유명 브랜드 핸드백을 들여오는 건 가격 차이가 워낙 커서다. 인기 상품인 샤넬 ‘2.55 빈티지 라지’의 백화점 판매가는 740만원. 2008년 334만원에서 2010년 539만원으로 오른 뒤 올 들어 또 뛰었다. 하지만 프랑스 현지에선 3750유로(약 540만원)에 살 수 있다. 명품 업계의 터무니없는 고가정책이 불법 반입을 부추기는 셈이다.

 대리반입은 엄하게 처벌된다. 부탁한 사람은 물론 반입해 준 사람까지 처벌받는다. 불법 반입된 물품은 세관에 압수되고, 물건값의 20~60%씩 각각 벌금으로 낸다. 이렇게 부과된 대리반입 벌금은 올 8월까지 1억9800만원. 지난해(8500만원)의 두 배 수준이다. 이만우 의원은 “내년부터 고가 가방에 개별소비세가 붙어 값이 더 오르면 명품 대리반입이 더 기승을 부릴 것”이라며 “처벌을 더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관의 감시망도 촘촘하다. 정호창 관세청 특수통관과장은 “국내 면세점에서 고가품을 샀거나, 해외 여행이 잦은 여행자는 전산 시스템에 의해 검사자로 자동 선별된다”고 밝혔다.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으로 가방에 붙는 8%의 관세가 없어졌다. 그런데도 일부 명품업체는 가격을 더 올렸다. ‘비쌀수록 잘 팔린다’는 믿음 때문이다. 과시욕구 때문에 재화의 가격이 비쌀수록 수요가 늘어난다는 소위 ‘베블렌 효과’가 한국 사회에 잘 들어맞는 것이다.

국내 공식 수입원을 거치지 않고 가장 많이 수입(병행수입)된 제품도 대부분 명품 브랜드였다. 민주통합당 김현미 의원에 따르면 지난해 병행수입이 많았던 브랜드는 루이뷔통(4744억원)·나이키(4652억원)·샤넬(4296억원)·구찌(2522억원)·카르티에(2052억원) 등이었다. 상위 10개 브랜드의 지난해 수입액이 2조6223억원에 달했다.

샤테크 샤넬백과 재테크의 합성어. 샤넬 핸드백 값이 계속 오르기 때문에 일단 사놓으면 나중에 중고로 팔아도 구입가보다 비싼 값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중고 핸드백 값이 그렇게 높지 않기 때문에 실체는 없다. 해외에서 유명 브랜드 새 제품을 국내보다 싼 가격에 들여온 뒤 팔아서 차익을 남기는 것도 넓은 의미의 샤테크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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