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정부 '철강수입 규제' 비난 여론 봇물

중앙일보

입력

부시 미 행정부가 자국의 철강산업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다.

지난달 세이프가드(긴급 수입제한 조치)발동을 위해 '통상법 201조' 에 따라 수입철강제품으로 인한 미국 업체의 피해 조사에 착수했으나 반대여론이 만만치 않다.

당장 싼 수입철강을 많이 쓰고 있는 자동차.가전회사들이 수입규제 움직임에 반대하고 있다. 외국 철강회사들의 덤핑을 문제삼기에 앞서 미국 업체들의 경쟁력부터 되돌아봐야 한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이런 가운데 보수진영의 대표적인 싱크탱크인 케이토연구소(http://www.cato.org)가 행정부의 철강수입 규제 방침을 보호무역주의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폴 오닐 미 재무장관이 지난 7일 G7(서방선진 7개국)재무장관 회담에서 세계 철강생산 감축을 위해 협력하자고 제안한 것도 수입규제가 무리수임을 어느 정도 인정한 것으로 해석된다.

법대로 수입규제조치를 취하기 어려운 상황이므로 국제적 협력과 중재를 통해 철강생산을 줄이자는 의도로 보이기 때문이다.

◇ '201조' 조사 어떻게 결정됐나=케이토연구소 무역정책연구센터의 브링크 린지 소장은 '내셔널 리뷰' 에 '철강 덫(Steel Trap)' 이란 제목의 기고문을 통해 "부시 대통령은 5월초 시장개방이 도덕적 의무라고 역설하고는 한달도 안돼 201조 발동을 지시했다" 며 일관성 없는 무역정책을 강도높게 비난했다.

다른 연구원들도 철강업계 피해조사는 자유무역이란 대의를 저버린 정책이라는 쪽이다.

린지 소장은 부시 행정부가 '무역협정촉진권(TPA)' 의 의회 통과를 위해 대표적 이익집단인 철강산업을 무시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철강산업의 노동자수는 20만명에 불과하나 관련 산업이 많아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의원수가 하원 1백명, 상원 33명에 이른다는 게 케이토측의 분석이다.

◇ 미국 소비자.산업도 피해=미국 철강은 수출 물량이 전체 생산량의 5%에 불과하다. 철강회사들은 무역장벽을 구축해 미국시장만 잘 지키면 된다.

그러나 미 행정부가 철강회사들 주장에 밀려 보호무역 조치를 취했다가는 소비자와 철강을 사용한 제조업체가 막심한 피해를 입는다. 경쟁이 줄어 철강값이 오르면 생산단가가 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철강 관련 제조업 종사자는 철강회사 고용자보다 40배가 많은 8백만명으로 제품가격이 올라 매출이 떨어지면 일자리를 위협받게 된다.

케이토 연소는 미국 소비자들이 철강회사 근로자 한명의 일자리를 보장하기 위해 73만2천달러를 지불해야 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 미국 협상력에 금갈 수도=연구소는 미국이 세이프가드를 발동할 경우 유럽연합(EU).일본.브라질 등에 좋은 빌미를 제공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들 나라들은 미국의 추가 시장개방 압력에 맞서고 있다. 미 행정부는 농업보조금을 계속 지급하겠다는 EU와, 시장을 열 만큼 열었다고 주장하는 일본 등을 설득할 명분을 잃게 돼 말 그대로 철강이란 '덫' 에 걸리게 된다는 것이다.

홍수현 기자 shinn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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