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치 아파서 병원 갔을땐 이미 온몸에…충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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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시에 사는 김우현(가명·56·무직)씨는 얼마 전 간암 2기로 간 절제 수술을 받았다. 간암의 원인은 C형 바이러스. 20여 년 전인 30대 중반에 감염된 C형 바이러스가 간염과 간경변을 거쳐 간암으로 진행된 것이다. 3년 전 직장 퇴직 전까지 매년 건강검진을 하며 간수치를 검사 받아왔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피곤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과로 때문이라고 생각해 건강식품만 챙겼다. 몇 달 전 명치 오른쪽 부위가 아파 병원에 갔을 땐 이미 간암 세포가 많이 퍼진 후였다.

증상 없어 10명 중 7명은 감염 몰라

최근 전남 진도군의 간암 발생율이 높다는 통계가 발표돼 보건당국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지역 남성의 간암 발생율(1999년~2003년)은 인구 10만명당 91.6명으로 전국 평균(46.5명)은 물론 전남평균(59.7명)보다 훨씬 높다. 중국이나 일본보다도 높은 수치다. 현재 질병관리본부는 이 지역 간암 발생의 유력한 원인으로 C형 간염을 지목하고 있다. 간암의 원인이 될 수 있는 B형 간염·C형 간염·음주·흡연 등을 모두 조사한 결과, 유독 C형 간염 환자가 다른 지역의 5~10배 많은 것으로 분석됐기 때문이다. 그만큼 C형 간염이 무섭다는 얘기다.

 이런 C형 간염은 기본건강검진 검사 항목에 포함되지 않는다. 삼성서울병원 소화기내과 최문석 교수는 “많은 사람이 건강검진을 할 때 C형 간염 검사를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일부 초고가 건강검진을 상품을 제외하고는 C형 간염 검사는 포함돼 있지 않다. 직장인들이 많이 받는 기본건강검진에는 당연히 빠져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증상도 없다. 국립암센터 소화기내과 김창민 박사(대한간학회 이사장)는 “바이러스가 급성 염증을 일으키는 기간(수 주~몇 달)이 있는데 다른 때보다 조금 피곤하다 생각하고 지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만성화 상태로 20년 넘게 증상을 못 느끼다 간암 말기에 통증이 와 병원을 찾는 사람이 상당하다”고 말했다. 을지대 예방의학교실 기모란 교수는 “C형 간염 환자의 35% 정도만 자신이 C형 간염 보유자인줄 알고 있다. 10명 중 7명은 자신이 감염된 줄 모른 채 살다 간암에 걸린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아쉽게도 C형 간염이 저절로 사라지는 경우는 10%에 그친다. 나머지 90%는 만성화돼 간경화를 거쳐 간암으로 이어진다.

술 즐겨먹는 40~50대 남성 요주의

특히 40~50대 남성은 이 C형 간염을 더 조심해야 한다. 중년 남성은 C형 간염이 간경화나 간암으로 이어질 악조건을 가지고 있다. 첫 번째는 음주다. 40~50대는 술 자리가 많다. 술을 즐기는 사람이 C형간염에 걸릴 경우 간암으로 이어질 확률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3배 정도 높다. 최문석 교수는 “음주자의 간에 C형 바이러스가 침입할 경우 바이러스 증식 속도가 훨씬 빠르다. 간경변증과 간암으로의 이행도 빨라진다”고 말했다.

 남성이라는 성별도 C형 간염에서는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김창민 박사는 “똑같은 C형 간염 바이러스가 침입해도 남성에게서 훨씬 빠르게 증식한다”고 말했다. 남성이 즐기는 흡연 또한 위해 요소다. 김 박사는 “흡연자는 C형 간염에서 간암으로 이어질 확률이 비흡연자에 비해 2~3배 더 높다”고 말했다.

 세 번째는 나이다. 중년엔 면역력이 떨어지기 쉽다. 바이러스는 스트레스로 면역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빨리 증식할 수 있다.

면역력이 좋은 상태에선 C형 간염 바이러스가 들어와도 가벼운 급성 염증만 일으켰다 저절로 사라진다. 하지만 면역력이 떨어진 상태에선 만성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더 높을 수 있다. C형간염은 예방 백신이 없다.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정숙향 교수는 “B형간염은 19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필수 예방백신 접종으로 크게 줄었고, A형간염은 3~4년 전 유행 이후 예방백신 접종률이 크게 올라 많이 줄었다. 초기 증상도 없고, 백신도 없는 C형간염이 가장 문제”라고 말했다.

 C형간염을 예방하려면 다른 사람의 혈액이 옮을만한 상황을 피해야 한다. 면도기·칫솔·침·주사기 등을 같이 쓰거나 문신과 피어싱을 조심한다. 정기 검진도 필요하다. 정 교수는 “40~50대 이상인 사람, 특히 1992년 이전에 수혈을 받은 적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검사 받아보길 권한다. 또 유난히 피곤함을 느끼거나 간 수치에 이상이 있는 사람도 검사를 받아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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