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주택경기 회복 국면 글로벌 증시에 단비 된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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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2호 20면

“할 수만 있다면 단독주택을 수십만 채라도 사고 싶다.”
‘오마하의 현인’이라 불리는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지난 2월 미국 경제전문 방송 CNBC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당시 그가 미 주택시장에 대한 강한 낙관론을 펼칠 때만 해도 투자자들은 반신반의했다. 그런데 그 무렵 경제전망의 정확도 면에서 정평이 난 손성원 캘리포니아주립대 석좌교수 역시 “미 주택시장이 바닥을 쳤으며 하반기에는 본격적인 회복 국면에 접어들 것”이라는 과감한 전망을 내놓았다. 결과는 어떠한가. 지금까지 나온 각종 경제지표를 살펴보면 버핏과 손 교수의 예측이 맞아떨어지는 분위기다. 역시 명불허전(名不虛傳)이다.

증시고수에게 듣는다

“주택경기 회복”, 전문가 예상 적중
미 주택시장 지표 중 가장 신뢰받는 건 주택건설업협회(NAHB)가 매월 발표하는 NAHB 주택시장지수다. 이 지수의 상승폭을 보면 미 주택경기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회복되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다. NAHB 주택시장지수는 9월 40으로 2006년 7월 이후 최고치였다. 아직 주택경기 호조를 나타내는 기준 50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2년 전 13의 3배, 연초 25보다 60% 높다. 이 밖에 시장조사업체 코어로직의 주택가격지수,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가 고안한 케이스-실러지수 같은 주요 부동산 지표도 좋아지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실제 주택 판매량이 증가 일로다. 이에 따라 주택시장 회복에 걸림돌이던 주택 재고 물량도 확 줄었다. 주택경기의 선행지표라 할 건축허가 건수가 급증했다는 사실 역시 미 주택경기가 하락세를 마감하고 상승세에 접어들었다는 강력한 신호로 해석된다. 주식시장에서도 건설 관련주의 주가가 들썩였다. 미국의 대표적 건축자재 업체 홈데포의 주가는 올 들어 40% 올랐다.

여전히 은행에 차압된 집이 많다는 점은 부담스럽지만 큰 틀에서의 주택시장 회복 추세를 되돌릴 정도의 위험 요인은 아니라고 본다. 그 근거로는 우선 주택이 다시금 매력적 투자자산으로 부활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렇게 설명할 수 있겠다. 최근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내놓은 강력한 경기부양책인 3차 양적 완화(QE3) 덕분에 모기지(Mortgage·주택담보대출) 금리가 내렸다. 이로 인해 미국에서는 낮은 금리로 모기지 대출을 받아 주택을 구입한 뒤 세를 줘 수익을 내려는 투자 수요가 늘고 있다. 현재 미국의 평균 임대수익률과 평균 모기지 금리 격차는 6% 이상 벌어졌다. 역대 가장 큰 폭이다.

미 주택경기 회복이 한국의 주식 투자자에게 어떤 의미를 지닐까. 사실 미 국내총생산(GDP)에서 주택건설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6%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많은 글로벌 투자전략가가 이 작은 부문의 긍정적 변화에 주목하는 이유는 뭘까. 세계 경제에 미치는 상징적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다. 멀리 돌이킬 필요도 없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이 뭐였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에 따른 주택시장의 거품 붕괴였다. 위기의 진원지였던 미 주택시장이 회복 국면이라는 건 분명 세계 경제에 고무적 신호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미 경제의 전반적 상황은 어떤가. 대표적 경제지표인 실질GDP는 이미 4년 전 금융위기 이전 수준으로 회복했다. 주식시장에서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도 2008년 초 수준에 도달했고, 나스닥지수는 2000년대 초 정보기술(IT) 붐 이후 최고 수준이다.

물론 다 좋은 건 아니다. 소비와 밀접한 지표들은 회복이 매우 더디다. 대표적인 것이 고용지표다. 미 비농업부문 고용자 수는 금융위기 이전보다 450만 명이나 적다. 소위 ‘고용 없는 경기회복(jobless recovery)’ 상황이다. 이는 소비를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해 미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 비슷한 상황은 가계의 재무 상태에서도 찾을 수 있다. 미 소비자들은 그동안 부채를 줄이면서 가계의 재무 건전성을 보강했다. 여기에 주가가 오르면서 소비자들의 금융투자 자산 수익률이 좋아졌다. 전반적으로 가계의 재무구조가 개선된 것이다. 그럼에도 아직 자산에서 부채를 뺀 가계 순자산은 금융위기 이전보다 크게 낮다. 빚잔치를 벌이고 나면 남는 돈이 별로 없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미 소비자들은 쉽게 지갑을 열지 못한다.

건설업에서 일자리 200만개 나와
요컨대 미 경제회복의 관건은 소비다. 그런 측면에서 주택경기의 회복은 앞서 지적한 소비 제약을 완화할 돌파구가 될 수 있다. 우선 금융위기 전보다 부족한 일자리 450만 개 중 200만 개가 건설업에서 나온다는 점에 비춰볼 때 주택경기 회복은 고용을 크게 늘릴 것이다. 또 주택 가격 상승은 미 가계의 자산가치를 증대시킴으로써 가계 재무 건전성을 높이고 민간소비 증가를 유발할 것이다. 실제 과거 데이터를 분석해보면 주가 상승에 의한 소비유발 효과에 비해 주택 가격 상승에 의한 소비유발 효과가 약 8배에 달한다.

미 주택시장 규모는 전체 경제 규모 대비 비중은 작지만 향후 이 나라의 성장 경로에 중요한 지지대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기회복의 단초를 찾지 못해 불확실성이 커지는 글로벌 경제에 단비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많은 투자자가 기대하는 중국의 경기부양이 가시화하기 전까지는 미 주택시장 동향이 당분간 글로벌 경기의 방향타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미 주택시장이 현재와 같은 회복 추세를 이어나간다면 주식시장에서는 향후 주택시장 회복이 불러올 소비 증가의 수혜주를 골라내야 한다. 산업재보다 소비재 기업에 좀 더 관심을 기울일 것을 권한다.



김석규(52) 한국투자신탁 펀드매니저, 리젠트자산 운용 상무 등을 거쳐 B&F투자자문과 교보투신운용의 대표를 지냈다. 펀드업계의 대표적 거시경제 전문가다. 서울대 국제경제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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