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시장에 가을 성수기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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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한기자] “20년 동안 부동산중개업을 하면서 가장 힘든 시기입니다. 9월 전세 한건 중개한 게 전부입니다.”

서울 송파구 잠실동 주공5단지 단지내 상가 A공인 관계자의 말이다. 이 단지 내 상가 중개업소 40여곳 가운데 전세조차 한건도 중개하지 못한 곳이 많다는 게 이 중개업자의 설명이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 주공아파트도 상황은 마찬가지. 4단지 H공인 관계자는 “지난달 취득세 감면해주겠다고 발표해 매수 문의가 조금 있는 것 같더니 곧 다시 잠잠해 졌다”고 말했다.

가을 성수기 9월, 8년만에 하락

가을 이사철 성수기가 실종됐다. 매년 9월은 집값과 전셋값이 가장 많이 오르고 거래량이 급증하는 시기지만 올해는 여름철보다 더 침체된 모습이다.

국민은행에 따르면 지난 9월 전국 집값은 0.2% 하락해 전달(-0.1%)은 물론 올 들어 하락폭이 가장 컸다. 9월 집값이 하락한 것은 2004년 이후 8년만에 처음이다.

서울·수도권 집값도 지난달 0.4% 떨어져 역시 전달(-0.3%)보다 낙폭이 컸다.

전셋값 움직임도 시원찮다. 지난달 전국 전셋값 변동률은 0.3%를 기록해 전달(0.1%)보다 소폭 오르긴 했다. 하지만 9월 전셋값이 매년 1% 이상 뛰었던 점을 염두에 두면 상승폭은 미미하다는 평가다. 서울·수도권 전셋값만 따져도 지난달 0.4% 올라 역시 1% 이상씩 뛰던 과거 성수기 모습을 찾기 힘들다.

매수세 2001년 이후 가장 낮아

국민은행이 서울·수도권 2000여 공인중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지난달 서울 부동산 거래에서 ‘매도 우위’라는 답이 91.3%나 됐다. 반면 ‘매수 우위’란 응답은 0.3%에 머물렀다.

‘매수우위지수’는 8.9로 조사를 시작한 2001년 1월 이후 가장 낮았다. 매수우위지수는 낮을수록 집을 사려는 사람이 적다는 의미다.

경기도와 인천을 포함한 수도권 매수우위지수도 9.3으로 조사를 시작한 2000년1월 이후 가장 낮았다. 수도권 매수우위지수가 10 밑으로 떨어진 것은 처음이다.

서울 아파트 실거래 건수(신고일 기준)는 지난달 2109건으로 1월 1585건 이후 가장 적었다. 올 1~9월 월간 평균 거래건수는 2953건이다.

중개업소가 느끼는 체감 거래동향은 더 나쁘다. 서울의 2000여 중개업자 가운데 매매동향에 대해 ‘한산함’이라고 답한 사람은 98%나 됐다. 전세거래도 ‘활발함’이라고 답한 비율은 4.1%에 불과했다.

9월은 원래 결혼 성수기와 맞물려 학군 이주 수요가 많은 2월 다음으로 거래가 많고 시세가 많이 뛰는 달이다.

1986년부터 올해까지 월별 평균 서울 집값을 보면 2월(0.9%) 상승폭이 가장 크고 9월(0.7%)이 그 다음이다. 전셋값의 경우 2월 평균 2%로 가장 많이 뛰었고, 3월(1.7%) 다음으로 상승폭이 큰 게 9월(1.4%)이다.

▲ 주택시장 성수기로 꼽히던 가을 이사철이지만 주택시장은 한산하다. 지난 9월 전국 주택시장은 거래량이 급감했다. 수도권의 한 아파트 단지.

취득세 감면 혜택 위해 거래 10월이후 미룬 경우 많아

가을 성수기임에도 주택시장 침체가 심각했던 것은 국내외 경기 위축이 장기화하면서 집값 상승 기대감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강남 대치동 T공인 관계자는 “경기가 좋지 않으니 전세도 재계약을 하고 그냥 눌러 앉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지난달엔 특히 9.11대책으로 취득세 감면이 결정됐지만 시행시기가 확정되지 않아 거래를 미룬 경우도 많은 것으로 보인다.

현대경제연구소 박덕배 연구위원은 “매수 심리가 극도로 위축돼 있고, 집값 상승 기대감이 사라졌는데 9월이라고 특별히 이사를 서두를 이유는 없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10월 거래 늘지만 집값 반등하긴 어렵다는 전망 많아

전문가들은 취득세 감면시기가 확정돼 이달엔 급매물 중심으로 거래량이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집값이 반등할 전망은 크지 않아 보인다. 한국은행이 이달 발표한 통화신용정책보고서에 따르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요 선진국 주택가격은 고점 대비 20~30%가량 떨어졌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1.7% 하락하는 데 그쳐 당분간 조정국면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대우증권 김재언 부동산팀장은 “이달 급매물 중심으로 거래량이 조금 늘어날 수는 있지만 추세적으로 증가세가 이어질 가능성은 적다”며 “국내외 경기 침체가 이어지고 있고 계속되는 가계 부채 문제, 주택수요를 이끌던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등으로 주택시장이 회복되긴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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